[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국가를 대표해 뛴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다. 선수 개인이 그만큼 가치있는 일을 찾기 어렵다.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국가대표로 뽑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프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수는 소속 구단이 한두푼도 아니고 천문학적 금액의 연봉을 주면서 쓰는 '자산'이다. 구단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부상인 이유다. 쓰지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줘야하니 말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프로리그에서는 부상에 대비해 보험을 든다. 거액의 FA 계약을 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보험에 가입돼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해당 프로리그가 아닌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려면 WBC와 보험계약을 한 보험사 NFP(National Financial Partners)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물론 보험료를 내는 소속팀이 반대하면 출전하기 어렵다.
2023년 WBC에서 푸에르토리코 마무리 에드윈 디아즈가 조별 경기에서 우승 후보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세이브를 올리며 승리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격하게 세리머니를 하다 무릎 인대를 다친 적이 있다. 디아즈는 그해 시즌을 통째로 쉬었으며, 당시 그의 연봉 1725만달러를 NFP가 소속팀 뉴욕 메츠 구단에 보험금으로 고스란히 지급했다.
NFP는 이후 WBC 출전 요건을 강화했다. 최근 3년간 수술 경력이 있거나, 장기간 부상자 명단(IL)에 등재된 선수들을 엄격하게 심사했다. 이번 WBC을 앞두고 NFP의 승인 거부로 출전이 가로막힌 메이저리거는 메츠 프란시스코 린도어, 미네소타 트윈스 카를로스 코레아(이상 푸에르토리코), LA 다저스 미구엘 로하스(베네수엘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호세 알바라도(베네수엘라) 등이다. 푸에르토리코의 경우 차별적이라면서 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주목을 끈 선수는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일본)다. 투타 겸업이라는 특수 케이스라 NFP는 더욱 세밀하게 살폈다. 일단 타자로만 뛰는 조건으로 대회 참가를 허락받았다. 물론 다저스 구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오타니는 2023년 9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1년 9개월의 재활을 마치고 작년 6월 마운드에 복귀했다. 1이닝부터 시작해 시즌 막판 5이닝까지 서서히 투구수를 늘린 오타니는 포스트시즌에도 투수로 나가 4경기를 던졌다.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WBC 기간 동안 마운드에는 오르지 않고 불펜피칭과 라이브피칭을 실시하며 시즌에 대비했다.
WBC 경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3월에 열리는 시범경기보다 부상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NFP의 염려와 조치가 이해되는 이유다. 이번 WBC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
한국 1루수 문보경(LG 트윈스)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파울을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원래 안좋았던 부위다. 통증을 참고 경기에는 계속 출전했지만, 귀국 후 시범경기에는 결장 중이다. 휴식과 주사 치료를 병행하고 있으나, 시즌 개막을 정상적으로 맞을 지는 미지수다.
투수 손주영(LG)은 호주전에 선발등판해 1이닝을 던지고 팔꿈치 통증을 일으켜 1라운드 후 중도 귀국했다. 4월 중순 복귀가 목표다.
일본 외야수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에서 1회 2루 도루를 하다 아웃되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물러난 스즈키는 컵스 캠프에 무릎에 보조대를 대고 나타났다. 정밀검진 결과 후방십자인대 미세 염좌 진단이 나와 훈련을 진행하면서 재검진을 받기로 했다. 그는 올해가 5년 8500만달러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다.
이탈리아 유틸리티 마일스 마스트로보니(시애틀 매리너스)는 조별 라운드 미국과의 경기에서 장딴지 근육을 다쳐 대회 도중 소속팀 캠프로 돌아갔다. 그는 대회 전 시범경기에서 만루홈런을 포함해 15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WBC에서는 3타수 2안타를 마크하며 타격감을 순조롭게 끌어올린 상태였다.
WBC 참가 의욕은 아시아 및 중남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아무래도 타향(미국)에서 뛰는 만큼 애국심도 자연스럽게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을 대표해야 하는 메이저리거들은 대부분 신중하다. 구단과 여론의 눈치를 살핀다. 이번에 미국 에이스 태릭 스쿠벌(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 조별 라운드 한 경기만 던지고 캠프로 돌아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야구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메이저리그(MLB)는 선수들이 WBC에서도 열심히 뛰기를 바라지만, 그걸 썩 반기지 않는 쪽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다. 딜레마다.
이 때문에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WBC를 3월이 아닌 시즌 중반에 개최하는 안을 검토중"이라고 했는데, 올스타전서 던지는 것도 조심스러운 빅리그 투수들이 6~7월에 가외로 몇 경기를 전력투구한다면 구단들이 좋아할까.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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