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트럼프의 '유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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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 멤버십 가입을 고민하다 결국 카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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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비 65달러(약 9만6천원)가 부담돼 가입을 미루고 있었지만, "코스트코 주유소 기름값이 일반 주유소보다 싸다"는 주변 이야기에 마음이 기울었다.

외식 때마다 붙는 팁과 고환율로 미국 물가는 늘 부담이었지만, 기름값만큼은 한국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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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2월 말 이란전이 시작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 내 기름값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갤런당 3달러(리터당 약 1천200원)에도 못 미치던 가격이 4달러(리터당 약 1천400원)를 넘어섰고, 주유는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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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찾은 코스트코 주유소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소비자들이 몇 센트라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주유소를 찾는 풍경은 낯설지 않지만, 요즘의 줄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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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 여파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면서 에너지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에너지 수송에서 해협 의존도가 높은 유럽·아시아와 달리 미국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은 긴밀히 연결돼 있고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곧바로 전세계 유가에 반영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고조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변수다.

그 여파는 미국 내 주유소 가격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아슬아슬한 휴전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까지 이란을 겨냥한 해상 봉쇄를 확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해역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군사적 충돌이 일단락되더라도 당분간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언제 갤런당 3달러 이하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는지에 관해 "올해 말이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돼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는 정치적으로도 부담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물가 상승은 유권자 체감도가 가장 높은 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의존도가 높은 미국에서 기름값은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선다. 주유소 가격표는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 불만과 정권에 대한 평가로 직결된다.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생산비를 자극해 다른 상품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만큼,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크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강경 기조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최대 압박을 통해 협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 시장의 불안을 키워 국내 물가를 자극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안보 전략과 국내 경제·정치적 부담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딜레마' 속에서 그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그리고 그 선택이 중간선거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yu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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