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오후 8시가 넘어가면서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에선 그야말로 이몽룡과 성춘향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듯한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춘향전에 나올법한 국악이 흐르는 가운데 6만5천여명의 멕시코 팬은 "BTS 어서 나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있었다. 두 문화 사이를 오가는 이런 기묘한 부조화는 곧이어 어마어마한 함성으로 단박에 깨졌다. "워치 디스, 워치 디스 빗 고잉 훌리건"(Watch this, watch this beat goin' hooligan)이라는 노래 첫 소절과 함께.
방탄소년단(BTS)의 새 앨범 '아리랑'에 수록된 '훌리건'이다.
'훌리건'과 함께 BTS가 멕시코 무대를 열어젖혔다. 팬들은 '훌리건' 음악이 나오자 큰 함성을 터뜨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서서 관람하던 10대 여학생 2명은 울음을 터뜨리더니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팬들의 열기가 뜨거운데, 10년이나 못 와서 죄송하다"는 BTS 멤버 슈가의 이날 멘트처럼, BTS가 멕시코시티를 찾은 건 2017년 이후 근 10년 만이다.
공연 시작 전에 만난 파울리나(28)는 "예전에 LA 공연에 가려 했으나 비자 문제로 못 갔다. 2015년부터 BTS의 팬이었는데, 그들의 무대를 고향인 멕시코에서 볼 수 있게 돼 너무 기대된다"고 했다. 옆에 있던 그녀의 친구 이센(28)도 "BTS를 볼 수 있다니 너무 놀랍다. 빨리 그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미(BTS 팬덤명)들은 5만명을 수용하는 '도쿄돔'보다도 큰 에스타디오 GNP세구로스를 가득 메웠다. 노래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은빛 응원봉은 멕시코의 밤하늘을 환한 은빛, 붉은빛, 보랏빛으로 채색했다. 아쉽게도 표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 팬들도 어림잡아 수만 명. 이들은 공연장 외곽 곳곳에서 먼발치에서나마 들리는 BTS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메가 히트곡 '페이크 러브'(Fake Love)가 울려 퍼질 때는 마치 테크노 댄스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팬들은 무당이 작두를 타듯, 높이 점프하며 응원봉을 흔들었고, 최근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스윔'(Swim)에선 라임까지 맞추며 노련하게 떼창을 했다.
한라산과 지리산보다 높은 해발고도 2천240m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가늠할 수 없이 많은 청춘이, '정신줄'을 놓은 채,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려는 각오를 담은, 이 포효하는 외침은 마치 하늘에 가닿을 듯했다. 공항 인근이라 항공기 이착륙이 잇달았지만, 항공기 소음 따윈 느낄 수조차 없었다.
공연의 절정은 앨범 '아리랑' 수록곡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를 부르는 대목. BTS는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벗어나 스타디움의 트랙을 돌면서 팬들이 서 있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멕시코 팬들은 BTS의 움직임에 열광하면서, 이 노래의 중간에 삽입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떼 지어 열창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확한 한국어로, 수만 명의 멕시코인이 부르는 '아리랑'의 한 구절이 멕시코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은 2시간을 조금 넘겨서 끝났다. 멕시코 팬들은 "형, 이제 멕시코 사람이야", "우리는 항상 여기 있어, 기억해줘", "멕시코는 당신들의 집", "정국아, 행복하자"와 같은 각양각색의 피켓을 흔들며 BTS에 대한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아울러 2015년 발매된 '화양연화' 앨범 수록곡 '잡아줘'를 또렷한 한국어로 떼창하며 BTS에게 요구했다. 다시 멕시코에 와달라고.
"꽉 잡아 나를 놓치기 전에, 내 맘이 너를 놓치기 전에."
이날 BTS 멤버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테 아모, 테 키에로"(Te amo, Te quiero).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멤버들은 다음 투어에선 "무조건 멕시코에 와야겠다"며 거듭 강조했다.
BTS는 이날 공연에 이어 9∼10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3회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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