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사이영상이 제정된 1956년 이후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수상한 선발투수가 한 명 있다.
1984년 시카고 컵스 우완 릭 섯클리프다.
그는 그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시즌을 시작해 15경기에서 94½이닝을 던져 4승5패, 평균자책점 5.15로 부진을 보이다가 6월 14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됐다. 클리블랜드는 당시 22승34패로 AL 동부지구 7위에 처져 있었고, 컵스는 33승25패로 NL 동부지구 선두였다. 클리블랜드는 시즌 포기를 선언하며 FA를 앞둔 섯클리프를 릴리프 2명과 함께 컵스로 보냈다.
그런데 섯클리프는 컵스 유니폼을 입자마자 에이스 모드로 회귀했다. 6월 중순부터 시즌 끝까지 20경기에 등판해 150⅓이닝을 투구해 16승1패, 평균자책점 2.69, 155탈삼진을 마크하며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7번 완투를 했고, 그 중 두 번 완봉승이었다.
시즌 중간에 리그가 바뀌었으니 규정이닝을 넘기긴 어려웠지만, 들쭉날쭉해도 웬만하면 8~9이닝을 던지면서 팀의 연승을 이끈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흥미롭게도 그해 NL 사이영상 투표에서 섯클리프는 만장일치 의견을 받았다. 24명의 기자단이 모두 그에게 1위표를 줬다. 뉴욕 메츠 드와이트 구든이 31경기, 218이닝, 17승9패, 평균자책점 2.60, 276탈삼진을 올렸으나, 누구에게도 1위표를 받지 못했다.
섯클리프는 투구이닝,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에서 밀렸지만, 승률(0.941)이 압도적이었다. 지금은 사이영상 평가 요소로 취급되지도 않는 다승과 승률이 완투가 일상적이던 당시에는 중요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평가 항목은 평균자책점과 투구이닝인데, 오히려 2010년 이후 두 부분에 대한 가중치는 더 커졌다.
올시즌 평균자책점과 투구이닝 사이에서 투표 기자단에 고민의 대상이 될 만한 투수가 바로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다.
18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NL 평균자책점 상위권 순위를 보자.
필라델피아 필리스 크리스토퍼 산체스가 1.82로 1위이고, 신시내티 페즈 체이스 번스(1.8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크리스 세일(1.96)과 브라이스 엘더(2.0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클 맥기비(2.10), 밀워키 브루어스 제이콥 미저라우스키(2.12)가 촘촘하게 2~6위를 형성하고 있다.
오타니는 0.82의 평균자책점이지만 44이닝에 그쳐 이날 현재 규정이닝(47이닝)에 3이닝이 부족하다. 그러나 규정이닝을 채우면 또 다시 양 리그를 합쳐 유일한 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이 부문 1위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오타니의 다음 등판은 오는 2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로 예정돼 있다. 그때가 되면 규정이닝은 50이닝이 된다. 오타니가 6이닝 이상을 1자책점 이하로 막으면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규정이닝을 채울 수 있다.
오타니는 3년 만에 투타 겸업을 시즌 시작부터 가동 중이다. 다저스가 6인 로테이션을 운영하기 때문에 오타니는 5~6일 휴식 후 등판한다. 5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그로서는 규정이닝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다. 등판할 때마다 6이닝을 소화해야 간헐적으로 규정이닝을 채울 수 있다. 평균자책점 순위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다.
한 번이라도 5회 이전에 조기강판하거나 대량 실점을 할 경우 순위표에서 사라지거나 0점대 평균자책점은 무너진다.
지금까지의 로테이션을 유지하면서 6이닝 이상을 꾸준히 던질 경우 올해 예상 투구이닝은 160이닝 안팎이다. 규정이닝 미달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면 NL 사이영상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걸까.
어차피 투구이닝과 탈삼진 부문서는 경쟁력이 없다. 그렇다면 평균자책점 부문서 경쟁자들을 압도해야 한다.
올시즌 7차례 등판을 전부 6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로 막아냈다. 4경기는 자책점이 없었다. 이런 압도적인 피칭이라면 규정이닝 미달이라도 꿈에 그리던 생애 첫 사이영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관건은 섯클리프처럼 투표 기자단에 강력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느냐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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