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경마의 절정은 5월이다. 그해 5월의 렛츠런파크 서울은 유난히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마리 경주마가 더비의 결승선을 가르며 9년 만의 삼관마 탄생을 예고했고, 한 노장 기수는 아무도 밟지 못한 2000승의 정상에 올랐다. 그 사이 황태자라 불리던 한 기수는 장거리 무대에서 또 하나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10년의 거리를 두고 그 5월을 다시 꺼내본다.
파워블레이드, 삼관의 두 번째 관문을 넘다
코리안더비(GⅠ, 1800m)는 한국 경마의 봄을 대표하는 경주다. 3세마 최고의 영예를 건 트리플크라운 두 번째 관문으로, 한 해의 세대 챔피언을 가리는 무대다.
그해 트리플크라운 시리즈의 첫 관문인 4월의 KRA컵 마일을 제압한 말은 '파워블레이드'였다. 씨수마 '메니피'의 자마로 전년도 브리더스컵 대상경주를 우승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은 파워블레이드는, KRA컵 마일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폭발적인 뒷심으로 선두를 제치고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5월 15일, 대망의 2관문 제19회 코리안더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고, 김용근 기수가 고삐를 잡은 파워블레이드는 무리 속에서 침착하게 흐름을 탔다.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서며 그는 가속을 시작했다. 마침내 2위마 '제타바이트'를 3마신 차로 따돌리며 결승선을 통과했고, 1분 52초 1의 더비 신기록을 작성했다. 9년 만의 삼관마 탄생을 향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른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2016년 7월, 파워블레이드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마저 우승하며 9년 만의 삼관마이자 첫 통합 삼관마로 등극하게 된다.
'경마대통령' 박태종, 2000승 고지에 서다
2016년 5월 21일, 렛츠런파크 서울, 그날의 경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고,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박태종 기수가 경주마 '강호천년'과 함께 결승선을 끊었다. 그러나 그 1승의 무게는 달랐다.
한국 경마 최초 통산 2000승이었다. 결승선을 가른 그 순간 경마장 전체가 들썩였다. 경주 결과가 확정되자 관람대 전면에 대기되어 있던 노란색 오픈카에 박태종 기수가 탑승했다. 그는 고객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한국경마기수협회는 2000승 달성을 기념 70돈 황금채찍을 선물했고 경마팬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2000명의 고객에게 국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한국마사회는 시상식이 끝난 뒤 박태종 기수의 팬사인회를 개최했으며 한 주 뒤인 5월 28일에는 박태종 기수의 2000승 달성을 기념해 렛츠런파크 서울 무료입장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날 박태종 기수는 "팬 여러분들께서 끊임없이 응원을 보내주셔서 2000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기수로서 저의 목표는 2000승을 달성하는 게 아니라 힘이 있는 한 끊임없이 경주에 출전하는 것"이라고 포부도 밝혔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2000승 뒤에도 경주로를 떠나지 않은 박태종 기수는 2019년 12월 2100승을, 2022년 3월에는 2200승을 달성했고, 대상경주 48회 우승, 최우수 기수 5회 수상이라는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기록을 남겼다. 2025년 12월 정년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한결같이 경주로 위에 있었다. 통산 출전 1만6016회, 최종 승수 2249승. 박태종 기수에게 2000승은 끝이 아니었다.
경마 황태자 문세영의 YTN배
YTN배는 2000년 광복절을 기념해 출발한 특별경주로, 장거리 우수마를 가리는 스테이어 시리즈의 두 번째 관문이다. 2016년 5월 29일 펼쳐진 제16회 YTN배의 화제는 '미소왕자', '광복칠십' 등 슈퍼루키 3세마들이었다. 미소왕자는 데뷔 무대에서 손쉽게 우승을 차지한 이래 단 한 번도 입상을 놓쳐본 적 없는 기대주였으며, 광복칠십 역시 7전 4승으로 출전마 중 가장 높은 승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관록의 4세 이상 경주마들과 신예들이 뒤섞인 혼전이 예고됐다.
출발 신호와 함께 2번마 미소왕자가 곧장 선두로 치고 나왔다. 후반부 바깥주로에서 4번마 광복칠십이 따라붙었지만, 직선 주로에서도 미소왕자의 단독 선두는 계속됐다. 안쪽에서는 10번마 천적이 거리차를 좁히려 추격했으나 쉽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결승선까지 미소왕자가 단독 선두를 지켜냈다. 문세영 기수와 호흡을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이른바 '와이어 투 와이어' 승리였다.
당시 문세영 기수는 서울경마 다승 상위권을 달리던 전성기였고, 2016년 5월의 YTN배 우승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문세영 기수가 올해 5월 코리안더비를 끝으로 현역 기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7월부터는 조교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기수로 경주로에 처음 선 날이 2001년 7월 6일이었으니, 25년 만의 여름에 그는 다른 신분으로 같은 경주로 앞에 선다. 경마 황태자의 인생 2막이 오른다.
※ 한국마사회는 매달 '한국경마 타임캡슐'을 통해 한국경마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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