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기도 한다. 우리사회가 갈수록 '젊고, 패기 넘치는 영건'에 주목하고 있지만 사실 '베테랑'의 가치 또한 분명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넓고 유연한 시각과 판단은 영건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에서는 특히 '베테랑'들의 존재감이 팀 전력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이들은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쏟아붓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자신의 플레이 하나가 팀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 지, 그리고 그 효과를 가장 뚜렷하게 내는 순간이 언제일 지를 안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베테랑을 '덕아웃 리더'라고 한다.
현재 삼성과 LG가 선두권에서 질주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에는 진갑용(39)과 이승엽(37)이라는 거목이 여전히 든든히 버텨주고 있다. LG 역시 이병규(39)와 박용택(34)이 '덕아웃 리더'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똑같은 맥락에서 KIA를 보자. 삼성-LG와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팀의 중심 역할을 해주면서 승부처에서 분위기를 바꿔줄 만한 '덕아웃 리더'가 없다. 바로 '삼성-LG에는 있고, KIA에는 없는 것'이다. 시즌 개막 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KIA가 현재 '4강복귀'도 장담하지 못할 만큼 추락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 KIA의 선수 엔트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타자는 최희섭(34)이다. 이전에는 김상훈(36)이 최연장자였는데,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현재 2군에 내려가 있다. 최희섭의 뒤에는 이범호와 박기남(이상 32세)이 있다.
최희섭과 이범호 그리고 박기남은 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들이다. 최근 1군에 합류한 최희섭은 다시 팀의 중심타자 역할을 맡았고, 이범호는 시즌 내내 3루 수비와 중심타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박기남도 백업 내야수로 제 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각자 이름값은 어느 정도 해내고 있는 셈.
그러나 이들이 과연 삼성의 진갑용이나 이승엽, 그리고 LG의 9번 이병규나 박용택처럼 '덕아웃 리더'인가라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주전으로 뛰고 안뛰고의 문제를 떠나 후배들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노련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모습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팀 타자 최고참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한 최희섭은 부진과 컨디션 난조로 최근까지 한 동안 2군에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덕아웃 리더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부진이 생기기 이전이나 1군에 돌아온 뒤에도 최희섭은 냉정히 말해 '덕아웃 리더'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인물이다. 순박하고,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며, 후배들과 거리감없이 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진갑용이나 이병규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이승엽에 비해서는 결정력이 떨어진다.
이범호는 일단 팀에 합류한 지 올해로 3년째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경험이나 실력 면에서 덕아웃 리더의 자격이 있지만, 아직 팀에 깊숙히 융화되지는 못했다. 박기남은 백업선수라 한계가 있다.
물론 힘이 넘치는 젊은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팀을 생동감있게 이끌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필요한 것은 들썩이는 에너지보다는 노련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차분한 생존법이다. 삼성과 LG는 이런 역할을 해줄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KIA에는 그런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의 위기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