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에 눈 뜬 두산 90년생 트리오

기사입력 2016-04-12 09:21


두산 90년생 삼총사 정수빈(왼쪽부터)-박건우-허경민.

루틴(routine).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는 행위다.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이지만, A급 선수들이 성공 비결로 꼽는 단어이기도 하다.

'타격 천재'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도 유명한 루틴 중독자다. 십 수년간 해온 행동과 훈련을 요즘도 고집스럽게 반복한다.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이던 2008년 일이다. NPB에 이어 MLB까지 정복한 그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일본 NHK가 70일 동안 따라다녔다. 놀랍게도 방송이 발견한 '특별함'은 점심 식사였다. 미국 생활 7년 동안 예외 없이 같은 음식만 섭취한 것이다. 홈 경기 전에는 와이프가 차려준 카레를, 원정 경기 전에는 치즈 피자만 먹었다. 프로그램 사회자는 "매일 의식을 치르는 듯한 식사다. 뇌와 위가 익숙해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그 만의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루틴' 효과를 본 타자는 KBO리그에도 있다. 지난 시즌 최다 안타왕에 오르며 FA 잭팟까지 터뜨린 유한준(kt 위즈)이 주인공이다. 30대 초반까지 그저 그랬던 81년생 베테랑은 자신만의 훈련법, 타격 동작, 하루 일과를 완성하며 톱클래스 반열에 올라섰다. 루틴을 통해 뒤늦게 전성기를 맞았다. 작년까지 그를 곁에서 지켜본 염경엽 넥센 감독은 "어떻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을 쳐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하는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루틴"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베어스 90년생 삼총사 허경민 정수빈 박건우는 이제 막 루틴에 눈을 뜬 경우다. 지난해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끈 스물 여섯 살 동기들이 자신만의 야구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시즌 초 성적이 아주 빼어난 건 아니다. 11일까지 8경기를 치러 허경민(0.243) 정수빈(0.200) 박건우(0.174) 모두 3할 밑 타율이다. 1번 허경민과 2번 정수빈은 테이블 세터, 박건우는 김현수 자리에 들어간 주전 좌익수이지만 쾌조의 타겸감은 아니다.

그럼에도 확신은 있다. 더는 선배들 흉내만 내는 막내급이 아니다. 허경민은 캠프 때만 해도 "나만의 타격이 정립되지 않아 고민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좋았던 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지만, 지금은 체계적으로 매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간을 정해놓고 때가 되면 스윙 연습을 하는 식이다. 이치로처럼 늘 카레와 치즈 피자를 먹는 건 아니지만 밥 먹는 시간도 규칙적이다. 정수빈과 박건우도 마찬가지다.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고 또 지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일명 '컨닝'이다. 친구의 행동이 좋아보이면 냉큼 따라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허경민은 "한번은 스윙 연습하려고 나가는데, (정)수빈이와 (박)건우가 먼저 일어나더라. '어머 시간됐네, 빨리 스윙 해야지'하고 방망이를 들고 나가더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친구들이 이젠 경기 전 시계만 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걸 표절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래저래 못 말리는 삼총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PC방에 함께 가거나 수다를 떨기 바쁘다는 그들.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야구를 보는 시선만큼은 달라졌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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