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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야구란 종목이 참 묘하다.
SSG 랜더스를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삼성 라이온즈. 시리즈를 마감한 4차전에서 십년감수 했다.
선발 후라도가 7이닝 9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2-0 리드를 남겨놓고 내려갔다.
투수의 불안감을 캐치한 벤치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선택은 우완 이승현이었다. 패착이 될 뻔 했다. 대타 오태곤에게 중전안타로 무사 1,2루에서 박성한에게 싹쓸이 동점 적시 2루타를 허용했다. 송구 미스로 무사 3루.
젊은 후배들이 뒷수습에 나섰다. 배찬승이 에레디아 한유섬 등 SSG 간판타자들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이호성이 고명준을 외야 뜬공 처리하며 기적 처럼 역전을 막았다.
삼성은 8회말 2사 1루에서 터진 디아즈의 결승 투런포와 이재현의 백투백 홈런으로 결국 5대2로 승리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8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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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태훈 볼넷 강판부터 엇나가긴 했다. 삼성 박진만 감독은 "김태훈이 하위타선을 막아주면 상위타선에 배찬승을 넣으려고 했는데 첫 타자 때 존과 차이가 커서 마운드 위에서 안정을 못한다고 판단해 이승현으로 바꿨는데 미스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베테랑 김태훈이 상대적으로 약한 하위타선을 막아주면 강한 상위타선에 배찬승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 당초 구상.
김태훈이 올라오자마자 흔들리면서 예정에 없던 이승현 카드로 징검다리를 삼으려 했던 순간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큰 위기를 만들었다. 사실 이승현 투입은 이유가 있었다. 3차전 어게인을 꿈꿨다.
이승현은 3차전에서 호투를 펼쳤다. 7회 2사 후 원태인의 뒤를 이어 두번째 투수로 등판, 이지영을 땅볼, 박성한을 144㎞ 직구로 삼진처리한 뒤 ⅔이닝 퍼펙투로 깔끔하게 마운드를 넘겼다. 3차전 승리 후 박진만 감독은 "이승현은 이지영 박성한에 상대적으로 강해 투입한 조커 카드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4차전에서 김태훈이 올라오자마자 제구가 흔들렸고, 때 마침 전날과 똑같은 이지영 박성한 타석이라 '이승현 어게인'을 꿈꿨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SSG 벤치에서 이승현에게 약한 이지영 대신 이승현에게 2타수2안타에 홈런까지 있는 오태곤 대타카드를 꺼냈고, 박성한도 이승현의 바깥쪽 빠른 직구에 이틀 연속 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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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타석에 던진 SSG의 대타 승부수가 결과적으로 디아즈의 결승 홈런으로 이어졌다.
선발 포수 조형우를 구원한 이지영 타석에 대타를 내면서 SSG의 남은 포수는 이번 시리즈에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던 루키 이율예 하나 뿐이었다. 3년 차 이로운이 1년 차 포수 이율예를 이끌어 가야 하는 상황.
이로운은 '거포에게 변화구' 공식을 따랐다. 디아즈에게 던진 4개의 공 중 3개가 120㎞대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현 시점의 디아즈는 빠른 공에 타이밍이 살짝 살짝 늦고 있었다.
4차전 직전 인터뷰에서 디아즈는 이를 인정했다. 비가 몰고온 가을 추위 탓이었다.
3차전에서 좌중간 타구에 포커스를 두고 타격을 했느냐는 질문에 디아즈는 고개를 저으며 "그건 딱히 아닌 것 같다. 어제 야구하면서 좀 너무 추워서 제 반응보다 좀 늦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나왔던 것 같다. 몸 상태를 어떻게 좀 계속 열을 내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런 부분 때문에 방향성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고 했다. 밀어친 게 아니고 빠른 공에 타이밍이 늦어 밀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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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세번째 타석에서 141㎞ 높은 슬라이더에도 살짝 늦었지만 좌익수 쪽으로 밀어 적시타를 날렸다. 2차전 4회 적시타 이후 9타석 만에 터진 안타는 변화구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디아즈 상대 볼배합의 정답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가을야구 생애 첫 마스크를 쓴 루키 이율예가 평소와 미세하게 다른 타자의 스윙 타이밍까지 캐치해 투수를 이끌기는 무리였다. SSG 이숭용 감독은 경기 후 이율예에 대해 "벤치에서 사인을 주지 않았다. 투수 포수가 알아서 했다. 주로 투수가 하는 대로 따라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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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8회 대타교체 없이 베테랑 포수 이지영이 8회말에도 마스크를 썼더라면 이로운에게 과연 120㎞대 체인지업을 요구했을까.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이지영을 경기에서 빠지게 한 선수가 바로 이승현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