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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혁의 이슈분석] '니들이 갱기를 망치고 있다고' 이례적 감독선임, 극에 달한 프런트 농구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20-04-29 10:32


사진제공=고양 오리온

'니들이 갱기를 망치고 있다고.'

숱한 어록을 지닌 강을준 감독이 오리온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선임이다. 감독 선임이 유력한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 감독 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온은 이렇게 설명한다.

"팀 분위기 쇄신과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에서 강을준 감독이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김 감독대행의 수석코치 발령에 대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일단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진 않는다.

강 감독은 2008년부터 LG를 3년간 맡았다.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진했다. 외국인 선수와 함께 사우나를 하는 등 신선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단, 이후 별다른 지도자 생활을 한 적은 없다. 공백이 길다.

프로농구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강 감독은 리더로서 역량은 있지만, 전술 전략이 세밀하진 않다. LG 사령탑 시절, 문태영의 포지션을 두고 꾸준히 파워포워드로 기용하면서 스몰포워드로 뛰고 싶은 문태영과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투자에 인색했다. 테리코 화이트를 데려오려다 실패했고, 결국 마커스 랜드리와 조던 하워드를 영입했다. 시즌 전 전략부터 차질이 있었다. 랜드리마저 부상으로 쓰러지자, 오리온은 지난 시즌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외국인 선수의 경우에도 수준 이하의 선수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오리온의 소극적 투자 때문이었다.

구단은 추일승 감독을 내보냈다. '자진 사퇴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오리온은 팀 성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김병철 수석코치에 대한 추일승 감독의 배려'라고 포장했다.

오리온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리고 오랫동안 수석코치를 역임하면서 오리온 차기 사령탑이 유력했던 김병철 수석코치의 감독 경험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때문에, 오리온 우승을 이끄는 등 오리온의 상위권을 이끌었지만, 시즌 도중 하차했던 추일승 감독에 대한 '경질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강 감독이 부임했다. 구체적 이유없이 '강을준 감독이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김병철 수석 코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추상적 '포장'을 했다.

당연히 소문이 돈다. 오리온 고위 수뇌부에서 현장(단장 사무국장)의 의견을 배제한 채 강 감독 영입을 추진했다는 얘기들이 오리온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학연, 지연 등이 얽혀 있다는 얘기도 있다.

단, 오리온 측에서는 완강히 부인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시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김병철 수석코치에 대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다시 수석코치를 맡긴 것이다. 강을준 감독의 경우, 2년 재계약을 했다. 리더십이 있는 사령탑이고, 우리 팀의 분위기 쇄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며 "농구단에 대한 투자 역시 인색하지 않다. 팬 서비스와 전력 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남자프로농구판의 '프런트 농구'는 위험수위에 치달았다.

올 시즌만 놓고 보더라도, 6개팀 사령탑 중 무난히 계약한 감독은 DB 이상범 감독이 유일하다. 현대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3년 재계약을 했지만, 계약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의 성과를 보면 재계약이 당연했지만, 모비스의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윗 선에서 유 감독의 재계약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플랜을 내놓기를 원했다'는 얘기가 있다. '유재학 감독의 단장설', '중국진출설' '지도자 은퇴설' 등 근거없는 루머가 생기기도 했다.

LG 조성원 감독의 부임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선이 있다. '적절한 선임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우승을 해야 하는 윈 나우팀에서 검증된 사령탑이 아닌 조성원 명지대 감독을 데려왔다는 것은 LG 스포츠단이 여전히 코칭스태프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한다.

삼성 이상민 감독과 임근배 감독의 재계약에서도 윗 선의 인사와 맞물려 변수들이 많이 발생했다. 또,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재계약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시즌 KGC의 경우, 데이비드 사이먼 계약 성사를 고위수뇌부의 실책으로 놓치면서 KGC는 우승권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물론 사령탑의 선임 권한은 구단을 운영하는 주체(모그룹 고위수뇌부, 단장)에게 있다.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단,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스포츠는 '명분'과 '상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사령탑을 선임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이런 인사를 하게 됐다는 '상식적 명분'이 매우 중요하다. 그 구단을 지지하는 팬을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남자농구의 사령탑 인사를 보면 현장의 의견을 배제한 채 그 구단의 특정 인사가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구단의 단장 손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현장과 소통이 원활한 SK,DB, KT, KCC 등의 구단과 달리, 객관적 전력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하는 현상이 나온다.

즉, 감독 선임 과정의 시스템 자체가 매우 불안해 질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팀을 과연 누가 강하게 만들 최적의 인물인가'라는 절대적 기준이 사라지고, 여러가지 부정적 변수들이 감독 선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갱기'를 망치고 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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