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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이 인터뷰는 한 장의 스틸 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 멍한 눈빛과 굳어 있는 표정. 제대로 판박이다. '푸흡'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전자까지 빼다박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조합이 가능하단 말인가. 제작사는 눈 밝은 캐스팅 디렉터에게 거하게 포상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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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정(이하 황) 다들 바쁘잖아. 만날 이유가 없지. 하하. / 박정민(이하 박) 우린 또 공적인 관계가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흐흐. / 이다윗(이하 이) 으하하! / (황) 이렇게 아들들을 만나니까 참 좋네. 촬영할 때 생각도 나고. 그때 정말 즐거웠는데 말야.
(이) 집안 내력이라고 해야 할까. / (황)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모두 다른데, 우리 셋은 가족이라 비슷하다. 나 같은 엄마 밑에서 자라면 얘들처럼 된다. 가족사진은 처음 만난 날 찍었는데, 데면데면한 느낌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가족끼리 사진 찍으면 괜히 어색해서 표정이 얼지 않나.
-서로 한가족이 됐다는 소식에 어떤 기분이었나?
(박) 황석정 선배가 엄마 역할이라고 하길래 '옳다구나' 싶었다. 평소 너무나 좋아했던 선배다.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황석정과 박정민은 한예종 연극원 출신이다) / (황) 사실 두 친구를 잘 몰랐는데, 현장에서 만나니 묘하게 느낌이 좋더라. 아주 훈훈했다.
-'순정'에 출연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황) 시나리오가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어린 시절 추억과 외로움 같은 그동안 잊고 있던 수많은 정서들이 환기되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좋은 영화니까 꼭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친 마음을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에 출연했다. 역할은 상관없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순정'을 만든 사람들의 순정이 다 담겨 있더라. 만족스럽다. (이다윗을 돌아보며) 너도 이렇게 얘기하란 말야. 꺄하하.
-황석정이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다던데?
(황) 스케줄이 도저히 안 맞았다. 그런데 제작사 피디 두 명이 찾아왔다. 어렵게 고사했는데 며칠 뒤 또 찾아왔다. 두세 번 그랬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비싼 술을 샀다. 그 술자리에서 출연 안 하는 것으로 얘기를 끝냈다. 그런데 피디들이 만취해서는 기억을 못하고 나를 또 찾아온 거다. 결국 넘어갔지 뭐. 돈은 돈대로 쓰고 결국 출연까지 했네. 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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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혀. 회사에서 먼저 제안했다.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나는 출연하고 싶었는데, 제작사에서 심사숙고하는 것 같더라. 가슴 두근거리며 답변을 기다렸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을 두세 번 만났는데 작품 얘기는 안 하고 대출 상담 같은 사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같이 작업해 보자고 연락을 받았다.
-이은희 감독이 이다윗을 직접 만나보니 너무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황) 얼핏 보면 다윗이 누구 닮았는데… 누구더라? 그래, 디카프리오 닮았어. (주변 스태프까지 박장대소) / (박) 네? 다윗이네 스태프들도 동의를 안 하는 것 같은데…. / (이) 아이고, 감독님이 왜 그런 얘기를 하셔가지고…. 감독님이 개덕이 이미지에 비해 잘생겼으니까 살을 좀 찌우자고 하셨다. 이후로 만나기만 하면 맛있는 걸 먹이셨다. 10킬로 정도 쪘다.
-개덕이가 형 용수가 장만한 새 배를 몰고 친구들과 섬에 놀러가는 사고를 친다. 배도 없어지고 개덕이도 없어졌다고 울부짖는 엄마와 그 소리에 용수가 놀라서 잠에서 깨는 장면, 용수가 배를 훔친 다섯 아이들을 얼차려 주는 장면에서 관객이 유독 많이 웃더라. 정말 재미있었다.
(황) 나는 욕밖에 안 했는데? / (박) 나는 때리기밖에 안 했다. / (이) 나는 욕 먹고 매 맞는 것밖에 안 했다. (일동 웃음) / (박) 그 장면에서 소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도 때려달라고 매달리지 않나. 영화에서 소현이의 다리가 불편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어린 친구니까 연기할 때 진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진땀 났다. / (이) 그 장면이 아마 3회차 촬영이었을 거다. 영화 촬영이 오랜만이라 내가 그동안 영화에서 어떻게 연기해 왔는지 며칠간 감을 못 잡고 있었는데, 정민이 형과 그 장면을 찍은 이후로 내 안의 봉인된 무언가가 탁 풀어졌다. 형에게 정말 고마웠다. 내가 형만 오면 쫓아다니고 붙어다녔다. 형과 촬영을 같이 한 날엔 친구들이랑 '정민이 형 연기 죽이지 않냐'고 매번 감탄했다. / (박) 난 그 장면에서 때린 것밖에 없는데? / (황) 다윗이 그때 맞아서 정신 차린 거 아냐?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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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배님의 에너지가 충만하니까 따라가려고 무진장 애썼다. 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힘이 빠지더라. 대단했다. 정말. / (황) 서로 다른 에너지로 두 사람이 등장하니까 재미있었던 거다. 나는 악다구니 써야 하는 역할이니까 계속 소리만 질렀지 뭐. 새 배를 산 뒤 용왕제 지내는 장면에선 징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소리 지르다 끝났다. / (이) 그 옆에서 우리는 황석정 선배님 연기에 감탄하느라 정신 없었다. 우와~ 박수가 절로 나왔다.
-세 모자가 진짜 바닷마을에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눈길이 갈 수밖에 없더라. 이 영화 안에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고민했나?
(황) 이 역할은 누가 해도 잘할 텐데, 왜 나에게 제안하는 걸까 싶었다. 나한테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운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하하. 내 아들이 다섯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중요한 역할이고, 내가 그의 엄마이지 않나. 내가 관객에게 믿음을 주지 않으면 아들도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어른 배우들의 책임이 되게 중요했다. 어린 배우들 연기가 그럴싸하고 뿌리가 있어 보이려면 부모들이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그 정서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할 텐데 걱정도 많았다. 다행히 고흥에 내려가서 여러 주민들을 만나고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예쁨 받으면서 저절로 정서를 갖게 됐다.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것. 내 역할은 거기까지다. / (박) 다섯 친구들에게 듬직한 큰형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는 고민을 했다. 실제로 여동생만 있지, 남동생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개덕이의 대사 중에 "배를 훔쳤을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나인데…"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형 용수를 염두에 둔 얘기다. 그 대사들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윗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suzak@sportschosun.com
[순정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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