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에 도전한 AI, 과연 인간 넘어설까?

기사입력 2016-03-14 09:20


9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대국이 펼쳐졌다.
이세돌과 맞붙을 알파고(AlphaGo)는 구글이 소유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업체 딥마인드가 창조해낸 인공지능 바둑 시스템이다.
이번 대국은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5집을 주는 중국 바둑 룰에 따라 진행된다. 제한시간은 2시간이고 이를 소진한 후에는 1분 초읽기가 3회씩 주어진다. 인간과 기계가 지능을 겨루는 세기의 바둑 대결은 9일부터 15일까지 다섯 번의 대국으로 펼쳐진다. 진지하게 대국에 임하고 있는 이세돌. <사진제공=구글>

'스타크래프트1' 경기 모습

프로게이머 이윤열이 현역 시절 경기를 하는 모습.

지난 2007년 위메이드 소속 시절 이윤열이 숙소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인해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어 이세돌에 3연승을 거둔 알파고의 '실력'으로 인해 AI에 대한 시선은 기존의 기대감을 뛰어넘어 '기계의 인간지배'라는 두려움으로까지 확산된 상태다. 반면 이번 대결은 원래부터 공정한 경쟁이 아니며 일종의 마케팅이기에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의 시각도 있다. 어쨌든 엄청난 데이터 저장과 연산능력을 보유한 기계의 힘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더불어 이번 대결에서 큰 관심을 받은 분야는 단연 e스포츠이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이 다음 도전 과제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e스포츠가 단순히 젊은 사람들의 놀이문화를 뛰어넘어 바둑에 버금가는 디지털 두뇌 스포츠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과연 '스타'에서도 AI가 승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여전히 인간이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점화된 것은 당연하다.

왜 e스포츠 인가?

e스포츠 종목은 다양하다. '스타'와 같은 정통 전략게임을 비롯해 '서든어택'이나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같은 FPS(1인칭 슈팅게임), '카트라이더'와 같은 레이싱게임, '블레이드&소울'과 같은 대전 액션게임 등이 있다. 이런 게임들의 재밌는 점을 뽑아서 개발된 MOBA(팀 전장 전투) 장르의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미 기존 스포츠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타'는 바둑의 지략싸움과 가장 유사한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날로그 전쟁의 디지털 버전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많다. 바둑은 상대와 번갈아 수를 두는 '턴제' 방식이기에 상대방의 전략을 보고 고심을 한 후 포석을 둘 수 있지만 '스타'는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전개되기에 직관력이 중요한 실시간 플레이라는 것이다. 또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 등 3가지 종족이 등장하고 각자 특징에 맞는 수많은 유닛(unit)이 등장, 바둑보다는 확실히 더 많은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천년 역사의 바둑에서 단 한번도 같은 대국이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지만, '스타' 역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이를 실행해내는 컨트롤 측면에서 플레이어마다의 개성이 녹아있기에 승부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 바둑은 전장을 한 눈에 보면서 싸울 수 있지만, '스타'는 서로의 전장(맵)이 가려진 상태에서 끊임없는 정찰과 전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알파고 이상의 AI가 개발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이길까?


'스타'에서는 바둑과 달리 인간이 더 유리할 것인가? 일단 이영호 홍진호 임요환 등 '스타'에서 이름을 떨쳤던 전직 프로게이머들은 하나같이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한 상태다. 바둑보다 훨씬 변수가 많은 '스타'의 특성을 들었다.

그렇다면 현역 시절 이세돌과 마찬가지로 '천재'라 불릴 정도로 상대의 전략과 전술을 살핀 후 이에 적합한 반격을 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머신'이라는 별명처럼 기계와 같은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컨트롤을 구사했던 이윤열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윤열은 '스타' 프로게이머 가운데 가장 많은 1100경기 이상의 공식전을 소화했기에, 구글이 개발을 진행할 경우 가장 많은 데이터를 참고할 수 있는 선수로 꼽힌다.

이윤열은 AI와 인간의 대등한 '세팅'을 전제로 들었다. 이윤열은 "이번처럼 알파고의 수(手)를 사람이 대신 놓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기계를 통해 직접 마우스와 키보드를 컨트롤하는 방식이라면 온갖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이 더 유리하다 할 수 있다"며 "맵을 살피는 방식도 인간처럼 유닛의 정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단순한 지능을 뛰어넘어 직관적인 판단력을 겸비한 프로게이머가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AI와 대결을 펼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역 시절 냉철한 판단력으로 이윤열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현재 SK텔레콤 T1 '스타2' 게임단을 이끌고 있는 최연성 감독의 의견은 좀 달랐다. 최 감독은 "과연 구글이 어느 정도의 AI와 기계를 개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이런 로봇이 나올 경우 마우스와 키보드를 직접 조작한다면 컨트롤 속도는 인간 이상으로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최고의 프로게이머라도 수많은 유닛을 일일이 조정할 수 없기에 대부분 부대지정을 한 후 물량으로 싸운다. 그런데 AI는 이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두 스타 플레이어는 게이머의 미세한 동작까지 구현하는 기계의 등장을 승부의 관건으로 봤다. 반응 속도나 안정성 면에선 AI가 훨씬 뛰어나겠지만,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의 구현 등에선 인간이 아직 앞선다는 평가인 셈이다.

'직관과 통찰의 게임'으로 불린 바둑에서 적어도 종합 연산 능력에선 인간을 뛰어넘은 AI가 또 다른 영역인 e스포츠 도전에서 얼만큼 진화할 수 있을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흥미를 모으고 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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