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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압도적인 무대의 힘…뮤지컬 '웃는 남자'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8-07-17 10:52



뮤지컬 '웃는 남자'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주인공 그윈플린의 비극이 시작되는 오프닝 장면. 사진제공=EMK

뮤지컬 '웃는 남자'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을 압도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범죄집단 '콤프라치스코'에 의해 주인공 그윈플렌의 운명은 거친 파도에 내던져진다. 순식간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검은 바다로 변한 무대 앞에서 관객들은 이내 숨을 죽인다.

총 제작비 175억원이 투입된 대작답게 '웃는 남자'의 '물량 공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빠른 무대전환을 따라 속속 등장하는 세트와 의상은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풍랑이 이는 바다와 눈보라 치는 벌판, 왕족의 침실과 내실, 재미있게 형상화한 의사당, 그리고 17세기 영국 왕실의 화려한 의상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눈을 쉴 틈이 없다.

양적, 기술적 측면에서 '웃는 남자'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에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사실 요즘 선보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예산 사정 때문에 이렇게 '풍족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이걸 한국의 제작진이, 그것도 초연 무대에서 별 흠없이 구현했다. 제작사인 EMK 엄홍현 프로듀서의 뚝심이 놀랍기만 하다.

1966년 임영웅 연출의 '살짜기 옵서예'를 기준으로 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창작 뮤지컬은 소재면에서 크게 2개의 흐름으로 발전해왔다. 하나는 에이콤의 '명성황후'(1995)와 '영웅'(2009)으로 대표되는 '한국적인'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웃는 남자'와 같이 외국 원작을 소재한 '글로벌한' 작품들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2000)이 히트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글로벌'의 계보는 "왜 외국이야기를 갖고 창작 뮤지컬을 만드느냐?"는 질타(?)에 간혹 시달리면서도 '셜록 홈즈'(2010)를 거쳐 대극장 작품인 '프랑켄슈타인'(2014), '마타하리'(2016) 등으로 역사를 이어왔고, 마침내 깊이 있는 서사를 담은 대작 '웃는 남자'를 탄생시켰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린 역의 박강현과 순수의 화신인 '데아' 역의 민경아. 사진제공=EMK
EMK는 위고의 걸작을 '부자의 천국은 가난한 자의 지옥'이라는 주제 아래 재구성한 뒤, 음악과 안무를 섞고, 세트와 의상을 배치하고, 재능있는 배우들을 기용해 6년에 걸쳐 완성했다. '종합예술 중의 종합예술'로 불리는 뮤지컬에서 월드 클래스급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또렷이 입증했다.

하지만 무대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 음악과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력한 음악과 탄탄한 스토리의 힘이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무대는 그것을 보완해야 하는데, '웃는 남자'는 마치 무대의 힘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듯 하다. 먼저 주인공 그윈플린의 대척점에 있는 상대역이 여러 명으로 분산돼 있어 집중도가 떨어진 것이 눈에 띈다. 또 긴장의 이완을 위한 장치이겠으나 부자와 권력자들을 코믹 캐릭터로 묘사하는 바람에 작품의 주제인 빈부의 갈등이 극한으로 끌어올려지지는 않는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조연'에 머문다.

10여 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서양의 뮤지컬 문법과 테크닉을 좀더 배워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허나 한국 뮤지컬이 이제 기술적으로는 월드클래스에 이르렀음을 '웃는 남자'는 입증했다.

이제 좀 더 욕심을 낼 때가 됐다. K-팝이 서양의 문법과 형식에 한국의 색깔, 스타일, 에너지를 담아 성공했듯이 K-뮤지컬도 '서양 뮤지컬을 서양 사람보다 더 잘 만든다'는 찬사를 넘어, 이제는 한국적 해석의 방식을 어떻게 세련되게 입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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