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SC인터뷰] "알탕영화 한계 인정"…'뜨거운 피' 천명관, '소설계 프랑켄슈타인'의 뜨거운 연출 데뷔(종합)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2-03-17 10:00 | 최종수정 2022-03-17 13:18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오랫동안 꿈꿔온 영화 연출의 꿈을 실현한 천명관(58) 감독.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신예 감독으로 도전은 생각보다 녹녹하지 않았다.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천명관 감독, 고래픽처스 제작). 첫 연출 데뷔에 나선 천명관 감독이 17일 오전 스포츠조선과 화상 인터뷰에서 '뜨거운 피'를 연출하게 된 계기부터 비하인드 에피소드까지 모두 공개했다.

'뜨거운 피'는 '캐비닛' '설계자들' 등 걸출한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K-누아르의 대가로 떠오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건달들의 표적이 된 부산의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뜨거운 피'. 손바닥만 한 작은 항구에서 법도 규칙도 없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다룬 치열한 스토리와 강렬한 캐릭터, 날것의 액션 등 장르적 재미를 선사, 올해 상반기를 달굴 'K-누아르'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뜨거운 피'를 연출한 천명관 감독은 등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소설 '고래'로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이라 불린 작가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 꿈꾼 연출 데뷔를 '뜨거운 피'로 실현,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천명관 작가는 근래 소설에서 본 적 없는 파격적인 표현력과 자유로운 화법으로 평단과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바, 첫 연출작인 '뜨거운 피'를 통해 신예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노련함으로 정통 누아르를 완성했다.


천명관 감독은 첫 연출작의 개봉을 앞둔 소감에 대해 "첫 연출작을 만들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고 모든 영화가 그렇듯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첫 연출에 대한 감회를 느낄 만한 여유도 없다. 그래도 결과를 보게 되니 후련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동료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로 연출을 데뷔하게 된 과정에 "김언수 작가가 소설이 출간되기 전 원고를 보여주고 연출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함께 원고도 보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김언수 작가는 부산의 낙후된 지역에서 자랐다.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내가 소설화를 제안해 '뜨거운 피'가 나왔다. 김언수 작가도 영화 연출을 결심했을 때 나를 적임자로 선택했다고 하더라. 내겐 뜻밖의 제안이었다. 내 작품은 2016년 발표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작품으로 연출 데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뜨거운 피' 이야기가 좋았고 재미있어서 연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생각하는 건달의 이야기가 잘 녹아 있었다. 보통 조폭 영화라고 하면 검은 양복을 입고 몰려다니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한 건달 영화를 볼 때면 공허하게 느꼈다. 기존 조폭 영화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유로 많이 싸웠다. 돈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에는 그런 요소가 담겨 있었고 그런 부분에 매료돼 연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첫 연출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는 천명관 감독. 그는 "연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다. 영화의 형식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지점이 매우 힘들더라. 소설을 쓰면 주로 길게 쓰지 않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고 주변의 인물, 과거,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걸 모두 한다면 4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실제로 '뜨거운 피' 시나리오를 쓸 때는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아 최종 편집본은 3시간이 넘더라. 영화는 2시간의 형식을 가진 장르고 그 지점이 가장 결정적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다음에는 그 지점을 엄격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연출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답했다.


또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사투리 대사도 난관이 많았다고. 천명관 감독은 "내가 부산 사람이 아니라 사투리 대사가 정말 힘들더라. 경상도 사투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잘 아는 부산 출신의 국문과 교수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주변에 경상도 출신이 많아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 동료 박민규 작가도 울산 출신인데 그 친구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며 "감독은 어떤 연기를 배우와 함께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투리 뉘앙스를 몰라 확신이 없었다. 그 점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영화의 캐릭터는 배우들이 많이 만든 것 같다. 김갑수 선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배우가 경상도 출신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자 평범한 삶을 꿈꾸는 구암의 실세 희수 역을 소화한 정우를 캐스팅한 이유도 남달랐다. 천명관 감독은 "정우는 일단 부산 출신이었다.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된 지역에서 나고 자랐더라. 무엇보다 정우의 자전적 이야기인 전작 '바람'(09)이 나오지 않았나? 정우 스스로도 희수 역할에 대해 욕심이 있었다. 초기부터 희수 역할에 적극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정우는 내게 밝고 명랑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우의 건달 이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건달의 우락부락한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희수의 날렵하고 예리한, 쓸쓸한 모습이 정우를 통해 구현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정우가 정말 이 작품을 잘하고 싶어 했다. 스스로 고민하고 연습을 많이 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가두기도했다. 한번은 너무 가두는 것 같아서 '여유를 주자'고 말하기도 했다. 희수의 배경과 성장 과정을 정우와 많이 나눴다. 희수는 내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실제로 구현하고 캐릭터를 잡아 연기한 것은 정우인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쓴 희수와 정우가 생각한 희수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정우가 생각한 희수가 좀 더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존중했다. 정우와 일하게 된 것은 굉장히 성공적인 일인 것 같다"고 자신했다.


천명관 감독은 조폭 세계를 주 배경으로 한 '뜨거운 피'가 여성 캐릭터를 소비했다는 혹평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가 소위 '알탕 영화(남자들만 부글거리는 영화라는 신조어)'라고 하지 않나? 우리 영화도 그런 범주에 속한 것 같다"며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인정한다. 우리 영화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고민이 많았다. 주체적이고 조금 더 남성과의 관계가 짙은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90년대 부산 건달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의 시대성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다"며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다른 영화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조금 더 채워나갈 것이다"고 다짐했다.

김언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뜨거운 피'는 정우,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등이 출연하고 소설가 천명관 작가의 첫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23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키다리스튜디오


▶ 무료로 보는 오늘의 운세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