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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술원 회원이자 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사 명예교수인 조너선 해슬럼은 신간 '전쟁의 유령'(21세기북스)에서 국제공산주의운동에 의해 힘을 얻은 전 세계 공산주의 혁명 세력과 이들을 상대한 자유세계 집정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두려움과 혐오가 파시즘의 준동을 막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영미권 자료들에 의존했던 기존의 연구 틀에서 벗어나 전 세계 각지의 문서보관소를 돌며 해당 시기의 외교관들에 의해 작성된 각종 외교문서와 비망록, 일기와 서신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을 집대성해 전간기 외교의 민낯을 공개한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득세하고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 스페인 내전, 중국에서 일어난 만주사변 등 20세기 초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에서 국제공산주의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영향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나치즘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공산 세력에는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으로 대우했다고 말한다. 가령, 영국 정치인들은 히틀러와 그의 오른팔 괴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소련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들은 소련과의 협상에 지위가 낮은 하급 관리들을 보내는가 하면, "우스꽝스럽고 치욕스러운 제안"을 하기 일쑤였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의 거래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볼셰비키주의 러시아에 대한 깊고 극복할 수 없는 혐오가 자리했다."
책은 이 외에도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절대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강자의 위압적인 태도, 너무도 가볍고 어이없는 이유로 협상이 결렬되고 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엉성한 국가 외교가 빚는 촌극, 잘못된 확신과 독선이 낳은 비극 등을 조명한다.
우동현 옮김. 63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