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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통령궁 앞에 조성된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시티 한복판의 기념비적 장소다.
한가운데 대형 멕시코 국기가 휘날리는 이곳에서는 스페인 지배에 저항해 멕시코가 일으킨 독립전쟁(1810년 9월 16일)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중 행사가 열린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마련된 단상에 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그러나 평소와는 조금 결이 다른 듯한 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엄숙한 표정의 정부 각료와 주요 지방자치단체장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오늘 우리는 500년 전 처형 당한 콰우테모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국가장'(國家葬)을 엄수했다.
콰우테모크는 현재의 멕시코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옛 아스테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다.
멕시코 문화부 홈페이지 자료를 보면 콰우테모크는 1521년께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몇 개월 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의 손에 붙잡혔다.
이후 아스테카 제국은 훗날 '슬픔의 밤'(노체 트리스테·Noche triste)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1521년 8월 13일을 전후해 사실상 몰락하게 된다.
아스텍 보물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스페인 사람들의 모진 고문을 견뎌내던 콰우테모크는 1525년 2월 28일 현 타바스코주(州)의 한 나무에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멕시코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멕시코 당국은 매년 2월 28일에 콰우테모크에 대한 설명 자료를 온라인에 공개하거나, 국립대와 함께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수백 년 전 역사의 인물을 상기하곤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년)보다 60여년이나 이른 시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국장까지 거행하며 현대적 의미를 되살리려는 멕시코인들의 노력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대통령의 연설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콰우테모크는 스페인 침략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지키기 위해 용기와 강인함을 보였다"며 "그는 멕시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자유, 주권, 독립 정신을 수호한 우리 국민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주민을 비롯해 특정 부류에 대한 차별 행위 근절 의지를 보인 뒤 "가장 불리한 상황,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라는 원칙을 계속 지켜나갈 존엄성을 간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지에서는 멕시코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다분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각종 '위협'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본다.
멕시코만 명칭 개칭(미국만), 관세 부과 강행 예고와 번복, 마약 유통국 낙인 등으로 '공격'하는 미국 행정부에 대해 멕시코 정부가 견고한 대응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종의 '민족주의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에초 엔 메히코'(메이드 인 멕시코) 소비 촉진 캠페인 역시 그 사례 중 하나다.
멕시코 변호사인 안토니오 에르난데스는 "멕시코에서 학생들은 콰우테모크를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배우곤 한다"며 "이는 때론 스페인의 잔학 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올해 국장 엄수는) 미국과 연관된 정세 속에서 콰우테모크를 조명하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 정부의 전략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원래도 비교적 높았던 셰인바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처음으로 이달 초 80%를 넘겼다.
멕시코 주지사협의회, 주요 경제인 단체, 전국 단위 노조 역시 정부 정책 방향과 속도 등에 대해 잇따라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멕시코 대통령은 일요일인 9일에도 소칼로 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에서 셰인바움은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한 관세 부과 유예 사실을 재차 공유하며 향후 정부의 대응 방침을 설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walde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