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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역서 10분 거리 조선 최대 왕릉군
동구릉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부터 시작해 500여년간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었다.
가히 조선 최대 왕릉군으로, 능역 면적이 약 196만㎡에 이른다.
2023년 경복궁 광화문 월대 복원 시에는 동구릉에 남아 있던 부재 40여 점이 쓰이기도 했다.
2024년 8월, 지하철 8호선 연장 구간인 별내선이 개통되며 동구릉역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취재팀도 지하철을 이용해 현장을 찾았다.
개찰구 앞에는 동구릉까지의 도보 거리와 소요 시간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3번 출구를 나와 약 700m,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역 구내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동구릉의 전경을 담은 영상물과 각 능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방문객의 이해를 도왔다.
◇ 푸른 억새의 건원릉
안쪽에 있는 건원릉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여러 왕릉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동구릉의 규모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원릉 근처에 다다르자 제향을 지내는 정자각과, 신도비가 있는 비각 너머 푸른 잔디가 보였다.
취재에 필요한 절차를 미리 밟아놨기에 경사지 위에 있는 능침까지 올라갔다.
여기에는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 직원이 동행했다.
키 큰 소나무가 둘러서 있는 능침에서 앞쪽을 바라보니 짙거나 옅은 다층적인 빛깔의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다.
건원릉의 조성 형식은 후대 조선왕릉의 기준이 됐다.
건원릉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억새(청완)다.
다른 왕릉과는 달리 봉분에 잔디가 아닌 억새가 덮였다.
태조의 뜻에 따라 고향 함흥의 억새를 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는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능에 함께 묻히길 원했다지만, 아들인 태종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봄철이라 봉분에는 생기 있는 푸른 억새가 자라고 있었다.
억새는 가을이면 은빛으로 변한다.
문화재청은 전통을 계승하고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한식에 억새를 베는 행사를 치러오고 있다.
전통 복장을 하고 억새를 자르는 행사는 무척이나 귀중한 우리의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 3개 왕릉의 '보물' 정자각
건원릉은 1408년 조성됐는데, 그다음 해 신도비가 세워졌다.
태조 이성계의 건국과정을 비롯해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석인데, 보물로 지정됐다.
건원릉의 정자각 역시 보물이다.
동구릉에는 보물 정자각 2개가 더 있다.
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 정자각이 보물이다.
목릉은 서로 다른 언덕에 3개의 봉분이 각각 있다.
목릉 정자각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다포 형식이다.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기둥과 처마 사이에 설치하는 건축 부재)를 배열했다.
다른 하나는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의 정자각이다.
팔작지붕 형태로 남아있는 정자각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흰개미 피해가 확인돼 해체 보수 과정을 거쳤다.
정자각의 윤곽과 색깔이 선명하게 보였다.
현종은 조선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던 시기에 현종이 출생했다.
◇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
조선왕릉의 유형은 봉분 형식에 따라 다양하다.
왕이나 왕비를 홀로 모신 단릉,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 하나로 함께 모신 합장릉,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따로 조성한 동원이강릉 등이 있다.
곡장 안에 왕과 2명의 왕비 봉분으로 구성된 형태를 삼연릉이라고 한다.
동구릉에선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왕릉 형태를 모두 볼 수 있다.
이 중 삼연릉은 유일하게 동구릉에만 있다.
추존된 24대 헌종과 효현황후, 효정황후의 능인 경릉이다.
능침 뒤쪽에 서서 삼연릉을 바라보니 3개의 봉분 형태가 뚜렷이 보였다.
◇ 웅장 정교 소박…다채로움
능침에 올라가 석물을 살펴보면 왕릉마다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석인(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과 문석인의 이목구비와 키, 석호(왕릉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석물)와 석양, 석마의 표정과 꼬리 모양까지 흥미로웠다.
어떤 왕릉에서는 석물이 크고 두께감이 있으며 눈과 코가 튀어나와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왕릉에서는 자연스러움과 정교함이 떠올랐다. 때로는 투박하고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조선 20대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에선 석물이 다른 곳보다 아담해 보였다.
단의왕후는 왕세자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추존됐다.
21대 영조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원릉은 의외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기존 왕릉과는 달리 능침 중계와 하계 사이의 단을 없애고 문석인과 무석인을 같은 단에 배치했다.
바로 앞 평지가 넓게 느껴져 개방감이 일었다.
왕과 왕비의 삶과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왕릉 조성 과정 등을 안내판에서 읽다 보면 당대의 정치 사회적 논쟁, 강력했거나 미약했던 왕권 등 역사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이야기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당대를 살았던 백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싱그러운 왕릉 숲길
왜가리가 날아드는 연지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지난 5월 중순부터 이달 말까지 조선왕릉 숲길 8곳을 개방했다.
여기에는 동구릉도 포함됐다.
취재팀은 경릉 주변에서 시작되는 숲길 구간을 걸었다.
왕복 40분 정도 거리에 싱그러운 빛깔의 나무들이 서 있었다.
자연학습장 인근에서 꽃이 핀 팥배나무, 작은 연못 등도 보였다.
이와는 별도로 동구릉 9기의 왕릉 중 숭릉에만 넓은 연지(연못)가 있다.
면적은 약 4천900㎡ 규모다.
네모난 형태로, 중간에는 둥근 섬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따른 것이다.
벤치에 앉아 연지와 건너편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성한 나무에 앉아있던 왜가리가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 박물관처럼 볼거리 많은 동구릉
입구엔 관람 예절 안내판
동구릉에는 왕릉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관람로 주변에선 '석조 유구'라는 작은 안내판과 마주치기도 했다.
땅에 반은 묻힌 듯한 석양, 나무 옆에 놓인 난간 석주 등이 보였다.
자세한 사연을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복원 또한 어쩌면 진행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구릉 입구 주변에 있는 '동구릉 석물 부재'에도 눈길이 갔다.
야외에 전시된 것인데, 1970년대 해체된 동구릉 외금천교 부재와 왕릉과 관련해 사용하지 않게 된 석물들이라고 한다.
바로 앞에는 역사문화관이 있다.
이곳에선 특별한 고석이 전시되고 있었다.
건원릉에 있던 고석 5기 중 1기다.
고석은 평평한 돌 위에서 직사각형의 혼유석을 받쳐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진 고석은 들어내고, 이전과 같은 재질과 모양의 고석을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금이 가고 손상된 고석이 장소를 바꿔 실내에서 관람객을 맞는 것이다.
동구릉 석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었다.
문석인과 무석인, 석호, 석양의 크기와 모양이 왕릉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할 수 있었다.
왕릉에선 자연 속에서 건축양식을 살피고 경관을 조망하며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관람 예절도 중요시된다.
동구릉 입구에는 맨발 보행을 금지하며, 텐트 반입과 확성기 금지 등 관람객 주의사항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