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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립오페라 이끈 베테랑…"음악은 경청의 중요성 가르쳐주죠"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음악은 우리에게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동료들의 연주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정치인들도 이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로렌스 르네스(55)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전 서로에게 경청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스웨덴 왕립오페라,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RCO), 독일 브레멘 필하모닉 등 유수 악단을 지휘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은 그는 여전히 모든 연주에서 새로 듣고 배울 점이 있다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한국 연주자들에게서 발견한 장점 역시 소통을 향한 열의였다. 5∼10일 개최되는 '2025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개·폐막공연 지휘를 위해 내한한 그는 젊고 열린 마음을 갖춘 연주자들 덕에 영감을 얻고 감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르네스는 "흔히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 영감을 준다고들 하지만, 지휘자 역시 연주자에게서 영감을 얻는다"며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연주자들을 지휘하는 경험은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며 웃음 지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교향악과 실내악 등을 선보이는 여름철 클래식 축제다.
르네스는 개·폐막공연에서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연주자가 주축이 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오른다.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첼리스트 문태국 등이 속해있다.
인터뷰에 앞서 첫 리허설을 마친 르네스는 젊은 연주자들의 에너지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남겼다. 한국 연주자들이 오랜만에 서로를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에서는 명절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고향으로 불러 함께 연주하게 하는 기획이 흥미롭다"며 "연주자들은 명절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을 것이다. 축제 같은 분위기 덕에 리허설 시작부터 긍정적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네스는 젊은 악단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공연 프로그램을 작곡가들의 초기 작품으로 채웠다.
5일 개막공연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기작 '돈 후안'을 비롯해 '영웅의 생애' 등을 들려주고, 10일 폐막공연에서는 말러의 초기작 교향곡 제1번 '거인'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한다.
그는 "음악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도 흥미로울 것"이라며 "'영웅의 생애'와 말러 교향곡 제1번에는 트럼펫 연주자가 무대 밖에서 연주하는 구간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슈트라우스가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했다는 사실도 두 사람의 연결고리"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관객들이 이번 공연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말러 곡에는 역경을 겪은 뒤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를 일궈내려는 노력이 담겼죠. '돈 후안'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관객들이 깊은 감정을 경험하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길 바라요."
르네스는 1995년 명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를 대신해 RCO 연주회를 지휘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2∼2017년 스웨덴 왕립 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뒤로는 다양한 악단과 협연하며 교향악과 오페라, 현대음악 작품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르네스가 지휘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우연했다. 14살에 네덜란드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치기 어린 조언을 귀담아들은 지휘자를 만나 지휘자라는 꿈을 꾸게 됐다고 떠올렸다.
그는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리허설하는데 왜인지는 몰랐으나 지휘자를 찾아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는 놀라면서도 제게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고, 설명을 듣더니 지휘자의 길을 제안하며 악보를 선물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순간이 쌓이며 르네스는 경청과 경험의 힘을 중시하는 지휘자로 성장했다. 나날이 음악에 대한 해석이 깊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그는 앞으로도 관객들과 인간적인 감정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악보는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작곡가의 생각과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해석해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감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cj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