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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쓴다'는 공초문학상 수상작 '너무 많은 잎'과 만해문학상 수상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청마문학상 수상작 '새벽에 생각하다' 등 천 시인의 시집 여덟 권에서 엄선한 시들을 수록했다.
시인은 비교적 짧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만한 61편을 직접 골랐다. 아울러 수록한 몇몇 작품의 시구를 간결하게 다듬고 의미를 더욱 함축했다.
표제작은 1998년 출간됐다가 현재는 절판된 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수록작으로, 2020년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빌딩 '광화문글판'에 일부가 실렸다.
2연 10행으로 이뤄진 이 시는 '너'를 향한 변함없는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아울러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의미와 이미지를 확장한다.
시의 화자는 1연에서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고 말한다. 뒤이어 화자는 "너에게 쓴 마음이 / 벌써 길이 되었다"고 덧붙인다.
앞쪽의 '쓰고'와 '쓴다'는 소식을 편지로 전한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나중에 나오는 '쓴'은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언어유희는 2연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이처럼 수록작들은 시어를 거듭 되뇌고 음미하도록 능란하게 변주했다. 그러면서도 삶을 통찰하고 절망을 이겨내는 희망을 담아내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 저 소리 뒤편에는 /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 저 모습 뒤편에는 /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시 '뒤편' 전문)
"절망만 한 절정이 어디 있으랴 /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 희망이 완창이다" (시 '완창' 전문)
천 시인은 운문으로 쓴 '시인의 말'에서 "자연이 / 새봄을 펼쳐 보이듯 참으로 / 한 순간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 / 짧은 시였으면 했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 짧은 시에 겹친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지만 /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 눈물을 보탠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천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삶의 의미를 생생하게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으며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청마문학상,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했다. 탁월한 시로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96쪽.
jae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