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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편견과 달리 에티오피아 항공은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에서 가장 뛰어난 항공사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운항 규모가 큰 항공사 중 하나이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대한항공 설립 연도인 1969년을 훨씬 앞선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 142개 도시를 운항하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에티오피아 항공이 정부 지분 100%의 국영 기업이라는 것이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으로 아디스아바바의 볼레 국제공항은 2020년 새로 확장하여 매년 2천5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정부는 에티오피아 항공의 성공을 바탕으로 2029년까지 1억 명의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메가 허브 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성공적으로 지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공항이 될 것이며 에티오피아 항공은 명실상부 세계적 수준인 항공사로 성장할 것이다.
에티오피아 항공 이야기로 긴 서두를 연 이유는 필자가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이용한 항공사가 에티오피아 항공이며, 이번 현지 조사도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여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홍콩을 잠시 들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천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직항이 운행되며 약 12시간 정도 걸린다. 아디스아바바 볼레 공항에 도착하면 대부분 승객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환승한다. 현대화된 시설 덕분에 이민국 통과 속도가 예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으며 수화물 역시 빠르게 나온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현장 조사는 주민 조직의 역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나 가던 시기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아디스아바바는 이번에 다시 보니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었다. 이런 발전의 배경에는 2018년부터 에티오피아의 총리로 재직하고 있는 번영당(Prosperity Party)의 아비 아머드가 있다. 아비 총리는 1976년생으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사이의 오랜 분쟁을 종결시킨 공적을 인정받아 201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상 다음 해인 2020년에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에서 발발한 내전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국제 구호물자까지 거부하며 두 얼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런 그의 치부를 덮기라도 하듯 아디스아바바는 도시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를 받아 아래 왼쪽 사진과 같이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는가 하면 도시 슬럼 지역은 재정비되어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 아직 개발되지 않은 허름한 곳들이 곳곳에 남아 높이 올라간 호화로운 건물들과 불협화음처럼 함께 서 있었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부자들만을 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디스아바바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두바이를 방불케 하는 환한 불빛들을 만날 수 있다.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서 호텔에서도 가끔 정전이 생기는데, 어떻게 거리에 밤새 이토록 휘황찬란한 전등이 켜져 있을 수 있는 걸까. 물론 덕분에 밤늦게 큰 걱정 없이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활보할 수는 있었지만, 도무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정부 주도의 빠른 개발은 도시 내에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승자는 자본을 지닌 사람들로 도시 개발을 통해 짧은 시간 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다. 이들은 도시 내 토지 개발을 명목으로 값싸게 토지를 제공받고, 정부의 정책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사업들을 운영하며 비현실적인 수입을 거둔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 탄압, 노동 착취 등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패자는 주로 도시 내에서 이미 거주하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다. 살아온 삶의 터전은 사라지고, 이들은 도시 외곽의 어느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다. 이들이 도시 개발로 인해 얻는 수익은 전혀 없을뿐더러 도시 개발 후에는 생활이 더욱 힘들어진다.
아래 사진은 아디스아바바의 높은 지역에 있는 도시 빈민촌이다. 위의 사진들에 나오는 곳과 같은 도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 개발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디스아바바의 도시 개발이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서 이 지역이 아직은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있다는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의 도시 개발이 더욱 확장되면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곧 외곽으로 이주되거나 쫓겨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익숙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이러한 도시 개발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승자와 패자는 늘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독식한 승자들로 인해 착취가 만연해지고, 패자의 삶 전체가 벼랑까지 몰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디스아바바 도시 개발의 두 얼굴을 목도하며, 승자가 조금만 더 패자를 신경 써 패자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