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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나는 지금 아름다운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 / 물도 없는데 / 물속에 있는 듯 // 내 코에서 돋아나온 문어 같은 조갯살 같은 코끼리의 간 같은 / 널찍한 혀 같은 / 나는 식물도 동물도 어류도 파충류도 아니야"(시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에서)
이번 시집은 미발표작 총 65편을 8부로 나눠 싣고, 김혜순의 편지와 이번 시집의 대표작인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 영문 번역본을 수록했다.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의 화자는 물도 없는데 물 안에 있는 듯하다며 자신이 식물도 동물도 어류도 파충류도 아니라며 세상이 구분 지은 카테고리를 거부한다. 이로써 세계와 자아를 동일시한다.
"네게 노래 불러주면 나는 성별이 달라져 / 여자가 되었다가 / 남자가 되었다가 다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자가생식의 성 // 너와 뒤척이면서 나는 인종이 달라져 / 레드 인종 블루 인종 핑크 인종"('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에서)
수록작들은 이처럼 죽음과 삶, 시작과 끝, 안과 밖 등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재 속 존재, 없음 속 생명 등 공존을 추구한다.
종반부에 실린 '김혜순의 편지'는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엿볼 수 있는 산문이다.
김혜순은 이 글에서 "이 시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죽음이 얼굴에 드리운 험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또 "이 시들을 쓰면서 고통도 슬픔도 비극도 유쾌한 그릇에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혜순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올해 독일 세계 문화의 집 국제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외국 명예회원으로도 선출됐다.
신작 시집은 출판사 난다의 시집 시리즈 '난다시편'의 첫 책이다. 시리즈 제목은 시를 모아 묶은 책이란 뜻의 시편(詩篇)에서 따 왔으며 '시인의 편지'로 책을 마무리한다는 뜻도 있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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