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만인은 치맥 앞에 평등하다"

기사입력 2025-11-01 08:32

[SBS '별에서 온 그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하고 있다. 2025.11.1 [공동취재] cityboy@yna.co.kr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2016년 3월 28일 오후 인천시 중구 월미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 '중국 아오란그룹 임직원 치맥파티' 행사에서 아오란그룹 임직원 4천500명이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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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 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1.1 [공동취재] cityboy@yna.co.kr

'눈 오는 날엔 치맥'이 11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엔 치맥'이 됐다.

2014년 천송이가 쏘아 올린 공을 지난달 30일 젠슨 황이 멋지게 받아치며 '코리안 치맥'이 또다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세계 인공지능(AI) 기술 생태계 중심에 있는 미국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회동하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대신 '치맥'(치킨+맥주)을 제안한 것은 K컬처·K푸드의 인기를 단적으로 증명한 현장이었다.

바로 다음날 엔비디아가 정부와 국내 4개 기업(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에 총 26만장, 최대 14조원에 달하는 GPU를 투입한다고 발표하면서 해당 모임은 이제 'GPU 치맥회동'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누리꾼들도 "만인은 치맥 앞에 평등하다"(네이버 아이디 'kjs***), "돈이 조 단위 있어도 치킨은 못 참는다"('mar***'), "젠슨 황이 치맥 홍보대사네"('man***') 등 두팔 벌려 호응했다.

이 역사적 'GPU 치맥회동'에 이르기까지 치맥 열풍을 이끌어온 K드라마를 돌아봤다. 회동이 이뤄진 깐부치킨의 '깐부'는 친한 친구를 뜻하는 속어로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유명해졌다.

◇ "눈 오는 날에는 치맥"…축구중계 장면엔 반드시 등장

'치맥'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K컬처의 상징어다. 이미 2021년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도 '치맥'(Chimaek)이 등재됐다.

OED는 '치맥'을 두고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 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라며 "프라이드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설명한다.

OED 설명처럼 해외에서 '코리안 치맥' 열풍은 2014년 SBS TV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가 활활 지폈다. 특히 중국을 뒤흔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 '별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가 "눈 오는 날에는 치맥인데"라며 치맥을 즐기는 모습은 단숨에 대륙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2016년 3월 중국 아오란그룹 직원 6천명이 포상휴가차 인천을 찾아 '별그대' 촬영지를 방문하고 월미도에서 대규모 치맥 파티를 여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2019년 tvN '사랑의 불시착'은 이러한 치맥 인기를 '주마가편' 했다. 특히 일본을 강타한 이 드라마에는 치맥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땅굴을 타고 평양에서 서울로 잠입한 정혁(현빈)이 치킨집에서 세리(손예진) 등과 함께 축구 중계를 보며 치맥을 즐기는 장면이 비중있게 그려졌다.

직장인들이 치맥 회식을 하거나 집에서 친구·가족끼리 둘러앉아 축구 중계를 보며 치맥을 즐기는 장면은 K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다.

tvN '식샤를 합시다'·'혼술남녀' 등 주인공들의 먹방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물론이고, '응답하라' 시리즈·'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등 일상을 강조한 드라마에도 치맥이 수시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아예 치킨집 사장인 경우도 많다.

2023년 디즈니+ 히트작 '무빙'에서 배우 류승룡은 재생능력과 괴력이라는 초능력을 숨긴채 먹고 살기 위해 치킨을 튀기는 장주원을 맡았다. 류승룡은 관객 1천600만명을 자랑하는 영화 '극한직업'(2019)에서도 위장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운영하는 경찰을 연기했다.

또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tvN '신사장 프로젝트'에서는 배우 한석규가 전설적인 협상가 출신으로 치킨집을 운영하는 신사장을 연기했다.

닭백숙과 비교해 치킨의 맛을 강조하는 장면들도 있다.

tvN '응답하라 1994'(2013)에서 충북 최대 양계장 집 아들 빙그레(차선우)는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하숙집에서 치킨을 처음 먹어보고 정신을 못 차린다. '집이 양계장을 하니 닭은 실컷 먹지 않았냐'는 물음에 빙그레는 '백숙만 먹어봐서 치킨이 맛있다'고 답한다.

◇ '한강 치맥'도 낭만…음주규제 논란 중심에 서기도

한강공원 치맥 먹방도 외국인들의 구미를 당긴다.

2017년 시청률 45%를 넘기며 큰 인기를 끈 KBS 2TV '황금빛 내인생'에서는 재벌집 막내딸 서현(이다인)이 가난한 청년 지호(서현수)의 손에 이끌려 한강에서 겨울 치맥을 경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호가 "너 한강에서 치맥 안 해봤다며?"라며 서현을 한강으로 데려가자 서현은 "이렇게 추운 데서 뭘 하냐"고 황당해했지만 이내 배달온 치킨과 맥주를 즐긴다.

이렇듯 한강변에 자리잡고 앉아 치킨을 주문하면 쏜살같이 "치킨 시키신 분~"이라며 배달 오토바이가 달려오는 장면도 K드라마에 흔히 등장한다.

자연히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강변 치맥은 '낭만'으로 떠올랐고,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 리얼리티 예능에서는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배달앱을 활용해 한강에서 치맥에 도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러한 한강공원 치맥은 한때 음주 규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21년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가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손모 씨 사건 이후 서울시는 한강공원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론이 엇갈리면서 해당 조례안은 2023년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에서 보류됐다.

서울시는 당시 실시한 시민의식 조사에서 '한강변 금주구역 지정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1%, '한강 치맥 문화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64.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치맥'이든 '치소'든 과다섭취는 건강에 악영향"

치맥의 강렬한 유혹은 톱스타 이효리의 과거 발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효리는 채식을 선언한 후 2012년 SBS TV '힐링캠프'에서 '채식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뭐냐'는 질문에 "정말 가끔 치킨에 맥주가 너무 땡긴다. 하지만 한번 먹으면 그 유혹을 참기 어려울 것 같아 절대 먹지 않는다"며 웃었다.

전문가들은 치킨의 고지방·고열량, 맥주의 알코올이 결합하면 건강에 복합적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섭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정하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일 "치맥은 고칼로리·고지방 음식으로, 통풍·고지혈증·위염 등 여러 질환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야식으로 섭취할 경우 위장에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득이하게 함께 먹는다면 액상과당이 없는 음료와 곁들이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조언했다.

김경우 인제대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결국 '양의 문제'"라며 "성분 자체가 해롭다기보다 과도하게 섭취할 때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맥주도 도수나 양을 조절하면 큰 문제는 없지만,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간 건강이나 통풍 등 대사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물이나 채소, 과일 등을 함께 섭취해 알코올의 독성 영향을 줄이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치맥보다는 치소(치킨+소주) 조합이 건강에는 좀 더 낫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에 대해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탄수화물·단백질보다 '열량'이 문제"라며 "튀긴 치킨의 지방과 맥주의 열량이 더해져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주와 맥주의 알코올 한 잔당 함량은 거의 비슷하다"며 "'치맥'이든 '치소'든 과음은 결국 지방간이나 고지혈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haem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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