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까지 한계란 없다(종합)

기사입력 2025-11-18 16:54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사진=트리플픽쳐스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데뷔 20년 차 아직도 연기가 쉽지 않다는 배우 김향기(25)가 다시 한번 인생작을 들고 관객을 찾았다.

휴먼 영화 '한란'(하명미 감독, 웬에버스튜디오·언제라도 제작)에서 제주 해녀로 딸 강해생(김민채)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어머니 고아진을 연기한 김향기. 그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한란'의 출연 계기부터 작품을 향한 애정을 전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한란'은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산과 바다를 건넌 모녀의 강인한 생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겨울에 피는 한라산의 난초'를 뜻하는 '한란'은 추위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꽃을 피우는 '한란'처럼 살기 위해 한라산으로 피신한 모녀의 생존 여정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위대함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한산: 용의 출현'(22, 김한민 감독) 이후 '한란'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김향기는 여섯 살 어린 딸을 둔 스물여섯 엄마로 파격 변신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하던 중 마을이 습격받았다는 말을 듣고 딸을 구하기 위해 하산하는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로 변신한 김향기는 촬영 3개월 전부터 제주어를 배우며 혼란하고 비극적인 제주의 한가운데 선 여성이자 엄마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사진=트리플픽쳐스
이날 김향기는 "'한란'은 일단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배우로서 욕심나는 캐릭터의 특성이 있었고 사건이나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다만 아무리 욕심 나는 작품이라고 해도 대본을 읽었을 때 쉽사리 잘 안 읽히면 출연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데, '한란'은 사건의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도 했고 시나리오도 너무 잘 읽혔다"며 "다들 내가 '한란'에서 엄마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이 놀라신 것 같더라. 그런데 정작 나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그렇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엄마 역할을 한다는 부분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젊은 나이에 엄마가 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한란'에서 엄마 고아진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일부분이지 엄마에 국한돼 연기를 해야 된다는 부담은 크게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란'이 가진 이야기의 흐름이나 그 시절 다양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아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모성애 연기에 대해서 "부담감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좀 찾아 봤다. 모성애라는 것은 뭘까 싶었다. 엄마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아진이라는 엄마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애로운 엄마라기 보다는 딸과 함께 나아가는 당찬 엄마로 볼 수 있다. 때론 딸과 친구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책에서 읽은 모성애는 아이를 출산하면 몸부터 정신까지 체계가 바뀐다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바뀌는 지점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진의 무모해 보이는 행동도 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을 일고 난 뒤 데뷔작이었던 영화 '마음이'(06, 박은형 감독) 촬영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원래 아이들이 진짜 신나게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확 지치는 지점이 있지 않나? 성인과 다르게 그런 지점이 확 보이는데 그때 엄마한테 의지를 하는 부분이 있다. 예전 생각이 나면서 촬영 다닐 때 우리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다 싶더라"고 머쓱하게 웃었다.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사진=트리플픽쳐스
4.3 사건을 다루는 마음가짐도 특별했다. 김향기는 "'한란'은 4.3 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부끄럽지만 나도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잘 몰랐던 사건이었다. 오히려 '한란'을 하면서 자세하게 배우게 된 것 같다. 준비 과정에서 하명미 감독이 알려준 정보도 있었고 실제로 제주도에 가서 다크 투어를 하면서 사건을 배우게 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훅 들어왔던 부분은 4.3 연구소에서 나온 책이었다. 그 책에 당시 여성들의 증언집이 담겨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너무 괴로웠다. 우리 작품 자체가 사건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도 있지만 그 안의 사람들 시점으로 가는 부분도 상당하다. 감정적으로 닿을 수 있는 지점이 많다. 보통 역사를 배울 때 사건으로 많이 배우지 않나?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그 시대의 사람으로서 다가가다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된 부분이 제주어였다. 배우로서 당연히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였고 다행히 미리 연습할 시간이 주어져 부담을 덜고 임했다. 제주어 감수자 분과 일대일 과외 하듯 준비했다. 연습하는 시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캐셔로' 촬영을 같이 하고 있었을 때인데 현장을 이동할 때도 제주어 대사 녹음본을 들으면서 최대한 숙지하려고 했다. 막상 현장에서 제주어 억양을 따라하다 보니 정작 아진의 감정이 잘 안 섞이는 느낌이었다. 억양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 입에 안 붙어 감 잡기 어렵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제주어 사투리로 접근을 안하고 제2외국어처럼 접근하려고 했고 그 방법으로 바꾼 뒤 감정이 잘 섞이는 걸 경험하게 됐다. 생각이 바뀌면서 제주어가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지점도 "부담이 되긴 했다"며 "하지만 그 부담이 배우로서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감당해야 하는 몫인 것 같다. 이 인물을 잘 표현해야 하는 숙명이 있는데 너무 부담을 안고 생각하면 막히는 지점이 많이 생긴다. 부담감을 안고 연기를 하면 만족할 수 없는 연기가 나올 때가 많아서 되도록 현장에서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진심을 전했다.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사진=트리플픽쳐스
김향기와 싱크로율 100%인 딸 강해생 역할의 아역 배우 김민채(7)에 대해서도 언니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김향기였다. 김향기는 "처음 민채를 봤을 때 정말 너무 귀여웠다. 주변에서 다들 나와 민채가 닮았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다. 오히려 나는 민채와 촬영하면서 같이 있다 보니 닮아가는 듯한 느낌이 많이 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며 "처음 민채를 만났을 때 민채가 말이 별로 없고 낯가림이 심하더라. 내가 많이 어렵나 보다 싶었고 이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후에 여러 번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금방 친해졌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좋아하는 과자나 취미 등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쌓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그는 "민채를 만나 새롭게 배운 것도 있다. 촬영 때 오히려 민채를 생각한다고 다 해주려고 하면 오히려 민채가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상대 역으로서 해줄 수 있는, 예를 들어 긴장을 살짝 덜어줄 수 있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게 민채에게 더 도움이 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초반에 말이 없던 것도 스스로 촬영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더라. 어린 아이가 아닌 배우로서 그날 해내야 할 연기를 떠올리며 몰려오는 부담 때문에 그러한 것 같다. 그래서 부담을 살짝 덜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로 다가갔다. 또 워낙 산에서 촬영이 많았는데, 현장에서 민채에게도 자연환경이 중요하지 않나? 같이 도토리도 줍고 버섯도 관찰하며 잘 지냈다"고 답했다.

이어 "나의 데뷔작이 영화 '마음이'(06, 박은형 감독)인데 그때 내 나이가 지금 민채가 '한란'을 찍었을 때였던 6살 나이였다. 사실 나도 민채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그때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잘 안 안나더라. 다만 이따금 내 기억 속에서 남은 이미지 중 하나가 촬영 현장에서 쉬는 타임에 엄마랑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스태프들에게도 나눠준 기억이 있다. 그게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서 민채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곱씹었다.


[SC인터뷰]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도 있었죠"…'한란' 김향기, 모성애…
사진=트리플픽쳐스
마지막으로 데뷔 20년 차를 맞은 김향기는 "힘든 시기가 있기도 했다. 지금도 연기는 늘 어렵고 힘들다. 20대 초반 내가 많이 했던 고민은 성인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인간 김향기의 바람과 아역 때부터 나를 좋아해준 이미지와 시선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다. 역할에 대한 고민이 컸고 그게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 들어온 역할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틀을 맞춰 연기해야 한다는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 많이 괴로웠고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엔 그 또한 연기를 잘 하고 싶기 때문에 파생된 고민인 것 같다. 최근엔 생각이 바뀌었다. 나에게 제안되는 작품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내가 해낼 자신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전보다 편안해진 것 같다. 20대 초반보다 작년쯤부터 즐기기 된 것 같다.

그는 "일탈하고 싶다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은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도 갈증과 갈망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생각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다양한 역할을 연기 하긴 했다. 순간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본 적 없는 색다른 장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작품에서 최대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연기를 향한 진심을 드러냈다.

'한란'은 김향기, 김민채, 황정남, 김원준, 최승준, 김다흰, 강채영, 강명주 등이 출연했고 '그녀의 취미생활'의 하명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6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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