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15년이라는 시간은 강산뿐만 아니라, K팝의 트렌드마저 수차례 바꿔놓기에 충분한 세월이다. 하지만 에이핑크(Apink)의 '핑크빛'은 결코 바래지 않았다. 청순한 핑크 색깔을 지켜온 시간의 힘은 오히려 세월을 머금고 더 선명해졌다.
에이핑크는 22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여덟 번째 단독 콘서트 '디 오리진: 에이핑크'를 개최하고, 자신들이 왜 K팝의 '오리지널'인지를 무대로 웅변했다.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이번 공연은 2년 9개월 만 완전체 컴백 이후, 이들이 왜 여전히 '현재진행형 레전드'로 불리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무대였다. 실제로 일반 예매 오픈 직후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티켓 파워도 입증했다.
이 같은 기대에 화답하듯 에이핑크는 데뷔 15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연출로 팬들을 맞이했다. 공연은 팀의 발자취를 헤드라인 기사 형식으로 담아낸 VCR로 포문을 열었고, 데뷔 초 티저를 오마주한 재현 영상이 이어지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데뷔곡 '몰라요'가 울려 퍼지며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에이핑크 정은지.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이어 '부비부', '마이 마이'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후 정은지는 "장충체육관 뚜껑을 열고 싶다. 오픈카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며 "슬퍼하지마"라 선창했다. 이에 팬들이 "노노노"라 우렁차게 외쳤고, 멤버들은 바로 '노노노' 무대를 펼쳤다.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노래답게 전주가 흐르자마자 전 관객이 일제히 기립해 하나가 되는 장관을 연출했다. 팬들의 폭발적인 떼창은 정은지의 바람대로 정말 장충체육관의 지붕이 금방이라도 열릴 듯한 전율을 선사했다.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오버화이트'와 '기억 더하기'로 이어진 발라드 섹션에서 15년 차의 깊은 감성을 증명하더니, 곧바로 파격적인 시도로 현장을 압도했다. '청순돌' 에이핑크가 '보이그룹'으로 변신한 것. 각 잡힌 수트 핏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멤버들은 동방신기 '주문'을 커버, 화끈한 반전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열기는 신보 '리 : 러브' 수록곡 '피지 소다' 무대로 더욱 뜨거워졌다. 데뷔 15주년 만에 처음 시도하는 힙합과 랩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에이핑크는 이를 완벽하게 소화,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에이핑크 윤보미.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기세를 몰아 '나싱', '레드 카펫' 까지 연이어 선보인 멤버들은 평소의 청순한 이미지와는 또 다른 강렬하고 힙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공연의 대미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면서 댄스곡 퍼레이드로 흐름이 이어졌다. '%%(응응)', '1도 없어', '덤더럼' 세련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히트곡들이 울려 퍼지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팬들 역시 완벽한 응원법으로 현장을 달궜다.
에이핑크 김남주.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에이핑크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청순한 감성의 무대들이 팬들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끈 것.
"기억하나요 우리 함께 했던 시간 L.O.V.E 러브 / 설레이나요 한 땐 모든 것이었던 L.O.V.E 러브."
메가 히트곡 '러브'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공연장 곳곳에서는 탄성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온 지금, 이 가사는 사랑 노래를 넘어 에이핑크와 팬들이 함께 걸어온 소중한 시간들을 되짚는 고백처럼 들렸다.
그 감동의 바통을 이어받은 '미스터 추' 역시 마찬가지. 전 관객이 기립해 "달콤하게 추"를 외치는 거대한 떼창 속에서 15년 전의 풋풋한 설렘과 현재의 단단한 애정이 교차했다.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이 공연의 피날레는 지난 1월 5일, 15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신곡 '러브 미 모어' 무대였다. '근본'을 정면으로 답습하며 가장 에이핑크다운 방식으로 15년의 내공을 증명한 곡.
무엇보다 히트곡 '리멤버'와 '내가 설렐 수 있게' 바로 뒤에 신곡 '러브 미 모어'를 배치한 연출이 압권이었다. "두 유 리멤버/ 우릴 비추던 태양/ 넓고 푸른 바다 마치 어제처럼/ 시간이 멈춰진 듯이 언제나 바랬듯이/ 리멤버 리멤버 리멤버" 라는 '리멤버' 가사처럼, 신곡 무대는 과거의 찬란한 기억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해냈다.
'러브 미 모어' 무대는 에이핑크 전공인 '청순 아련' 정공법을 택해, 축적된 서사를 현재형으로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에이핑크라는 클래식의 당당한 연장이자 15년 차의 내공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에이핑크 오하영.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무대 위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가려진 멤버들의 진심 어린 고백은 장내를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김남주는 정은지에게 "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늘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힘이 돼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울먹였고, 정은지가 윤보미를 향해 "보석 같은 존재, 늘 반짝였으면 좋겠다"고 전하자 윤보미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팬(판다)과의 대화에서는 15년을 함께한 동반자로서의 깊은 유대감이 터져 나왔다. 윤보미는 "15년 동안 함께해 준 판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고, 오하영은 "계속 활동하는 유일한 이유가 팬들"이라며 "우리가 여전히 공연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 의심조차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박초롱은 "15년 동안 잘 일궈냈으니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여러분 덕분에 에이핑크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며 리더 답게, 변함없는 원동력을 강조했다.
그러자 결국 김남주는 오열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준비한 콘서트였다"는 김남주는 "누군가 에이핑크의 손을 놓아도 우리는 우리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라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정은지는 "이 순간은 여러분이 내어준 기적이 모여 만든 것"이라며 "건강히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팬들에게 공을 돌리며 뭉클한 재회를 기약했다.
에이핑크 박초롱. 사진 제공=위드어스엔터테인먼트
'디 오리진: 에이핑크'는 에이핑크의 지난 15년을 추억하는 자리를 넘어, 이들이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15년의 서막을 알리는 공연이었다. '롱런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증명된 시간. 핑크빛 판다봉 물결 너머로 비친 멤버들의 흔들림 없는 눈빛은 에이핑크의 '오리진'이 이제 막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