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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무려 20년간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의 이미지는 그동안 철저하게 왜곡됐다. 주류측에선 마치 '뿔달린 악마'처럼 희화화 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타의추종을 불허헌다. 요즘도 80대에서 20대까지 누구와도 격의없이 토론을 한다. 현역 국가대표도 포함돼 있다. 귀를 열어둔다. "협회장에 당선되면 4년 임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욕심이 없다.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축구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 시대에 빚진 것은 없다. 사심없이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한국 축구를 제대로 만들어 놓은 후 4년 후에는 떠날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이다.
2전3기의 도전이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행정가로도 활약했다. 최순영 전 축구협회장이 재임하던 1980년대 국제담당 이사와 김우중 전 축구협회장 체제였던 1990∼1991년 국제담당 부회장 겸 상비군관리위원장(현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기술위원장 시절 훈련 수당과 전임 감독제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깔끔한 매너로 '국제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 정몽준 현 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축구협회 수장에 오른 후 주류에서 이탈했다. 1997년과 2009년 두 차례 축구협회장(1997년, 2009년) 선거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4년 전 선거는 희망의 불씨였다. 정 명예회장이 내세운 조중연 후보와의 대결에서 10대18, 8표차로 졌다. 당시 축구협회의 특권인 중앙대의원(5표) 제도가 존재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인식됐다. 많아야 2~3표 정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변의 10표를 얻으면서 재도전에 발판을 마련했다. 중앙대의원 제도는 2010년 폐지됐다.
현재 판세를 보면 허 회장이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상대의 흑색선전도 만만치 않다. 허 회장은 "마치 선거 때마다 내가 단체를 결성한다는데 한국축구연구소는 순수하게 설립된 단체다. 교수, 박사님 등 15~16분들과 함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미나도 열었고, 정기 간행물 등도 발간했다"며 "그러나 협회 집행부가 색안경을 끼고 봤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했다. 그래서 지난번 선거 3개월을 앞두고 접자고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머릿속은 변화로 가득하다. 현재 축구협회는 잦은 실정으로 빛을 잃었다. "할 말이 없고,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그는 "성역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했다. 투명한 행정을 위해 모든 것을 개방할 계획이다. 각급 대표팀에는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K-리그를 위해서는 프로연맹에 월권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도울 예정이다. A매치 중계권을 K-리그와 연계해 강력한 패키지를 만들어 낼 참이다. "A매치의 중계권료를 낮추더라도 K-리그 중계를 강력하게 원하는 딜이 돼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교육국과 기술국을 분리, 세계 수준의 시스템을 설계하겠다고 했다.
"결국 축구협회 핵심 인물들은 젊고, 의욕있고, 추진력이 뛰어난 실력있는 사람으로 구조가 바뀌어야 된다. 인사가 만사다. 난 구애 받을 것이 없다. 각 분야의 축구인들과 의논해 최고의 인적 구성으로 새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나를 끝으로 우리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허 회장은 축구가 다시 한번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