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권 꿈꾸는 후보 인물탐구] ①허승표

최종수정 2013-01-21 10:00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무려 20년간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의 이미지는 그동안 철저하게 왜곡됐다. 주류측에선 마치 '뿔달린 악마'처럼 희화화 했다.

실상은 달랐다. 손자, 손녀와의 사이에서 깨소금이 쏟아지는 영락없는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는데 모두 분가시켰다. 손자와 손녀를 선물받았는데 손자는 축구를 좋아해 잔디에서 함께 뒹굴고, 손녀를 위해서는 집 한켠에 놀이방을 만들어줬다. 요즘 바빠서 한 달 정도 못 놀아줬는데 눈에 밟힌다." 자상한 미소가 가득했다.

제52회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67)을 16일 만났다. 4명의 후보 중 최 연장자다. 유일한 축구인 출신이다. 축구와 호흡한 세월도 가장 길다. GS그룹을 창업한 고 허만정 회장의 일곱번째 아들인 그는 '재벌 수업'이 아닌 축구를 선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섀도 스트라이커인 그는 보성고 재학시절 청소년대표팀에 1차 선발된 유망주였다.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 1972년 잉글랜드 아스널FC의 초청으로 아스널과 코벤트리FC에서 훈련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 지도자 스쿨을 이수하고 자격증도 획득했다. 1974년 고 최은택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최종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다. 연세대를 거친 그는 서울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타의추종을 불허헌다. 요즘도 80대에서 20대까지 누구와도 격의없이 토론을 한다. 현역 국가대표도 포함돼 있다. 귀를 열어둔다. "협회장에 당선되면 4년 임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욕심이 없다.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축구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 시대에 빚진 것은 없다. 사심없이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한국 축구를 제대로 만들어 놓은 후 4년 후에는 떠날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이다.

'허승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답하다', 공약집은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가 담겼다. 그는 6개 공약을 제시했다. 월드클래스를 향한 선진 행정 & 국제협력 시도협회·연맹 역량강화를 위한 분권화 투명하고 건강한 재정 함께 누리고 함께 행복한 교육&복지 축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저변확대 스포츠과학을 통한 경기력 강화로 한국 축구가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6개 정책 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축구협회에 특별자문회의 신설 온라인 회장실 신설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과거에 발목잡히면 안된다. 미래를 향한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된다. 전세계 축구 흐름이 우리 안방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축구가 추락하면 국가 위상도도 추락한다. 하루라도 늦추면 안된다. 모든 축구인들이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야 된다."

2전3기의 도전이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행정가로도 활약했다. 최순영 전 축구협회장이 재임하던 1980년대 국제담당 이사와 김우중 전 축구협회장 체제였던 1990∼1991년 국제담당 부회장 겸 상비군관리위원장(현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기술위원장 시절 훈련 수당과 전임 감독제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깔끔한 매너로 '국제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 정몽준 현 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축구협회 수장에 오른 후 주류에서 이탈했다. 1997년과 2009년 두 차례 축구협회장(1997년, 2009년) 선거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4년 전 선거는 희망의 불씨였다. 정 명예회장이 내세운 조중연 후보와의 대결에서 10대18, 8표차로 졌다. 당시 축구협회의 특권인 중앙대의원(5표) 제도가 존재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인식됐다. 많아야 2~3표 정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변의 10표를 얻으면서 재도전에 발판을 마련했다. 중앙대의원 제도는 2010년 폐지됐다.

현재 판세를 보면 허 회장이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상대의 흑색선전도 만만치 않다. 허 회장은 "마치 선거 때마다 내가 단체를 결성한다는데 한국축구연구소는 순수하게 설립된 단체다. 교수, 박사님 등 15~16분들과 함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미나도 열었고, 정기 간행물 등도 발간했다"며 "그러나 협회 집행부가 색안경을 끼고 봤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했다. 그래서 지난번 선거 3개월을 앞두고 접자고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머릿속은 변화로 가득하다. 현재 축구협회는 잦은 실정으로 빛을 잃었다. "할 말이 없고,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그는 "성역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했다. 투명한 행정을 위해 모든 것을 개방할 계획이다. 각급 대표팀에는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K-리그를 위해서는 프로연맹에 월권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도울 예정이다. A매치 중계권을 K-리그와 연계해 강력한 패키지를 만들어 낼 참이다. "A매치의 중계권료를 낮추더라도 K-리그 중계를 강력하게 원하는 딜이 돼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교육국과 기술국을 분리, 세계 수준의 시스템을 설계하겠다고 했다.

"결국 축구협회 핵심 인물들은 젊고, 의욕있고, 추진력이 뛰어난 실력있는 사람으로 구조가 바뀌어야 된다. 인사가 만사다. 난 구애 받을 것이 없다. 각 분야의 축구인들과 의논해 최고의 인적 구성으로 새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나를 끝으로 우리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허 회장은 축구가 다시 한번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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