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산시로에서 최강이라 불리던 바르샤를 상대로 2-0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늘 새벽 캄누에서는 무려 4골이나 내주며 16강에 그쳐야 했던 밀란. 1차전에서 굳게 잠겨 있었던 밀란의 자물쇠는 시작부터 메시에 의해 '잠금 해제'됐고, 마지막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 융단폭격을 맞았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내려 좋은 결과를 얻은 이 팀으로선 바르샤를 상대하는 방식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고, 이번 2차전에서도 창으로 찌르는 데 욕심을 내기보다는 방패를 더욱 단단하게 잡는 경기를 펼치려 했겠지만, 그 결과는 판이했다.
지난 1차전이 끝난 뒤 일각에서는 '메시가 사라졌다.'는 표현까지 나왔는데, 이 선수는 2차전이 시작한 지 5분도 안 된 시점부터 밀란 수비수들과 골키퍼 아비아티를 멍하게 만드는 선제골로 아우라를 풍기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 4~5명이 한꺼번에 둘러쌌음에도, 그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빠른 슈팅 타이밍으로 골문 구석을 예리하게 찌르는 슈팅이 나오리란 건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부분. 두 골이나 앞섰던 밀란이기에 '얼마나 잘 버티느냐, 바르샤의 선제골을 얼마나 잘 제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너무나도 일찍 터져버린 메시의 선제골 탓에 그들의 계획도,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마인드도 상당히 꼬여버렸다는 생각이다.
시작부터 터진 골은 밀란의 진영에 균열을 불러일으켰고, 지난 1차전에서 나왔던 라인 사이의 끈적끈적함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11명의 선수를 어느 곳에 어떻게 배치하며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축구. 2주 전엔 메시 이외의 선수들에게 확실한 수비를 펼치며 효과적인 볼 배급을 막았던 밀란이 '흑자 경영'을 했다면, 이번엔 완벽히 살아난 이니에스타에 고전한 데 이어 메시에게 할당한 3~4명의 선수들도 완벽한 역할 수행을 보여주지 못하며 처참한 '적자 경영'을 기록했다. 탄력이 떨어지고, 밀도가 낮아진 밀란의 미드필더-수비 라인 사이에서 바르샤는 유유히 전진했고, 볼을 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템포를 잡아먹었던 1차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그들의 축구를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 속 밀란을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상대 공격을 끊어낸 뒤의 잘못된 대응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누적 스코어에서 1-2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우려했던 선제골이 너무 이르게 터지다 보니 본인들 스스로도 꽤 조급해졌던 모양이다. 부지런히 따라가 힘겹게 상대 공격을 종결짓는 데엔 성공했지만, 이후 볼을 처리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부정확해 바르샤의 전방 압박에 끊기기 일쑤였다. '바르샤 공격 → 밀란 수비 → 볼 탈취 → 전진 패스 → 패스미스 → 다시 바르샤 공격'으로 이어진 악순환 속에서 밀란은 볼을 점유하며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를 잃게 됐고, 바르샤의 장단에 수동적으로 따라가야만 하는 입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은 계속 반복됐다.
바르샤의 공격을 상대로 밀란이 수비 훈련을 하는 듯했던 흐름, 1차전 내용이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당시 밀란은 전방 압박을 펼친 바르샤가 간격 유지를 위해 최후방 수비 라인도 끌어 올리자, 앞선에 위치한 엘 샤라위를 중심으로 상대 뒷공간을 치는 롱패스를 적절히 혼용했는데, 어쩌면 오늘도 이러한 방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스체라노의 헤딩 실수로부터 골 포스트를 때린 니앙의 슈팅이 나왔던 것처럼 본인들의 진영에서 시작한 짧은 패스 위주의 빌드업이 먹혀들지 않았을 땐, 조금 더 안정적으로 가야 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1차전과 비교해 롱패스의 비중(1차전 총 패스 314개, 롱패스 48개 / 2차전 총 패스 366개, 롱패스 56개)자체에서는 큰 차이가 안 날지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공격에 접목시킨 정도에서는 꽤 큰 차이가 났다.
메시의 추가골로 원점이 된 경기, ?1차전에서 굳건히 잠가 놓은 자물쇠를 고집할 수도 없었던 밀란은 앞으로 나와야 했고, 후반 들어서는 무게중심을 훨씬 더 공격 쪽으로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 상황에서 비야의 추가골이 터지며 희망을 잃었고, 문타리와 호비뉴, 그리고 보얀까지 투입하며 공격적인 색깔을 냈으나 그럴수록 생긴 뒷공간은 바르샤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적극적이었던 호비뉴, 왼쪽의 보얀과 오른쪽 아바테의 루트를 활용해 한 골을 노렸으나, 알바가 먹잇감을 놓치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쐐기를 박았던 2차전, 무자비할 정도의 뒤집기를 당했던 밀란으로선 아쉬움이 너무나도 클 경기다.<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