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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가 아니었다. 소년의 키는 유난히 작았다. 동북고 1학년 때의 키가 1m60 남짓이었다. 합숙훈련을 하면서 우유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남들은 웃을 일이지만 우유에 밥을 마는 심정은 처절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20세 때인 1989년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됐다. 터닝포인트였다. 10년 주기로 한국 축구를 뒤흔든 기적을 일궈냈다. 1992년 처음으로 줄기를 바꿨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군에 입대했다. 1992년 포철(현 포항)에 입단, K-리그에 데뷔했다. 23세의 어린 나이지만 그는 달랐다. 포철의 철벽 수비라인을 이끌며 팀의 우승을 일궈냈다. 신인상과는 격이 맞지 않았다.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 선수가 MVP(최우수선수)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세상은 과정이 아닌 환희만을 기억한다. 실력보다는 운이 좋다는 말을 한다. 모르는 얘기다. 그는 고통, 눈물과 동거했다. 10년 전 월드컵대표팀 승선까지 굴곡의 연속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선수 길들이기'에 달인이다. 33세 최고참 홍명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큼 혹독했다.
2005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2006년 독일월드컵 코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코치에 이어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런던에서 화려한 역사를 썼다. 그리고 감독으로는 최고봉인 월드컵 사령탑에 올랐다.
선수들은 홍 감독에게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단다. 홍 감독은 늘 맨앞에 서 있었다. 때론 카리스마를 앞세운 강력한 리더십으로, 때론 눈물도 숨기지 않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개인보다는 팀, 기량보다는 정신력이 우선이었다. 늘 준비돼 있었기에 신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이젠 월드컵이다. 브라질을 향한 홍 감독의 또 다른 진군이 시작됐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