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히어로' 이광종을 말한다

최종수정 2013-07-05 09:16

◇이광종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 파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현역시절 명성과 지도력은 반비례 한다.' 축구계의 오랜 격언 중 하나다.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맨유를 유럽 최강으로 키운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현역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숱한 스타 출신 지도자들의 빛을 모두 가릴 만큼의 업적을 세웠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안지 감독도 마찬가지다.

터키 20세 이하 청소년월드컵 8강 진출을 이뤄내며 주목받고 있는 이광종 감독(49)도 비슷한 케이스다. 1987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유공(현 제주)에 입단해 8년을 활약했고, 1996년 신생팀 수원에서 2시즌을 뛴 뒤 은퇴할 때까지 프로통산 266경기, 36골-21도움의 성적을 올렸다. 10년의 프로생활 동안 그의 자리는 조연이었다.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으나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축구인들에게 선수 이광종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소리없는 영웅)'로 기억되고 있다.

유소년 지도자 입문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지도자로 전향했던 199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지도자 자격은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가 택한 길은 유소년 무대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인 무대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2000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 1기로 들어간 뒤 유소년 발굴 외길을 걸었다. "굳이 외로운 길을 걸을 필요가 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음지생활은 현역시절 단련됐던 부분이다. 끊임없는 자기관리를 동력으로 삼았다. 이런 노력은 15세 이하 청소년팀 감독(2002년), 20세 이하 청소년팀 수석코치(2003년), 유소년 전임지도자 팀장(2004년~현재) 부임으로 귀결됐다.

이 감독은 2007년 국내에서 열린 17세 이하 청소년월드컵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박경훈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기대 이하의 결과를 2년 만에 극복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내공이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팀에 녹여냈다. 2008년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 4강행에 이어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22년 만의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탄력을 받았다. 201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4강, 2011년 콜롬비아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16강행을 이끌어 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유소년 지도자로 거듭났다. 터키 대회 8강 진출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소년대표팀 조차 프로 선수 출신으로 채워지는게 세계적인 추세다. 이광종호에는 프로와 아마의 경계가 없다. 2009년엔 일반 고교 출신인 김진수(신갈고·현 니가타) 박선주(언남고·현 포항)가 쟁쟁한 프로 유스 출신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빛을 냈다. 2011년에는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백성동(연세대·현 이와타) 장현수(연세대·현 도쿄) 김경중(고려대·현 캉) 최성근(고려대·현 고후) 이기제(동국대·현 시미즈) 문상윤(아주대·현 인천)를 뽑아 성과를 만들었다. 역대 최약체로 평가됐던 이번 터키 대회의 주역 역시 대학생 선수들이다. 이름값에서는 밀리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선호해왔다.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 재연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 감독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다. "주변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 잘하겠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알찼던 그의 행보는 해피엔딩을 향하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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