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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건 정말, 드라마다!"
지소연은 홈에서 중국-북한에 2연패하며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다. "할말이 없다. 홈에서 자꾸 져서 죄송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마지막 한일전을 앞두고 "우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반 13분, 지소연의 그림같은 오른발 프리킥이 일본의 골망에 꽂혔다. "머릿속에 그린 그림 그대로"였다. 후반 21분 A매치 70경기를 뛴 백전노장 권하늘의 크로스는 절묘했다. 전가을이 쇄도하며 일본 수비수 2명을 따돌리는 새 지소연이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감각적인 슈팅으로 또다시 골망을 흔들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지소연 위로 선수들이 인간탑을 쌓았다.
2011년 지소연이 일본리그에 진출한 이후 일본여자축구는 승승장구했다. 독일여자월드컵 우승, 런던올림픽 준우승 등 성적과 비례해 인기도 수직상승했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 직후 반짝 스타덤을 누린 지소연은 늘 마음이 아팠다. 3년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한국 여자축구에 늘 가슴아팠다. 파주NFC에서 남자대표팀에 방을 내준 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지소연은 '일본 킬러'가 됐다. 일본전에서 3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일본전에만 나서면 강해지는 이유를 물었다. "일본 여자축구는 한국을 밑으로 보고 좀 깔보는 것이 있다. 그래서 꼭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5년2개월만에 지소연의 한국이 일본을 이겼다. 지소연은 27일 곧바로 고베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속팀에 가서 동료들한테 시달리겠다는 농담에 "괜찮아요. 이겼잖아요. 다 감당할 수 있어요"라며 씩씩하게 웃었다. "승리후 일본 절친들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고도 털어놨다. "일본을 처음으로 이겨서 정말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믹스트존에서 일본기자들의 질문 공세도 거셌다. 지소연이 능숙한 일본어로 응했다. 일본팀 사이드백 주전이 나오지 못했다는 일본기자의 말에, "우리도 확정된 주전이 아니다. 완벽한 팀이 어딨느냐"며 대차게 응수했다. 사사키 노리오 일본 감독은 "이기고자 하는 정신력에서 한국이 강했다"며 패배를 자인했다. 28일 '의외의 패배에 일본 축구협회장이 격노했다'는 외신이 날아들었다.
남과 북을 함께 구한 '지메시'
중국을 1대0으로 이긴 김광민 북한여자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골을 더 많이 넣었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1승1무'의 최강 일본이 한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 일본의 승리를 점쳤다. 2승1무의 북한과 동률을 이룰 경우, 골 득실차에서 일본에 밀릴 것이 뻔했다. 우승은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태극낭자들의 발끝에 북한의 우승이 달려 있었다. 전반 13분 지소연의 프리킥 골에 한국보다 북한이 더 뜨겁게 환호했다. 하프타임, 북한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한국의 라커룸 앞을 지나갔다.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힘내시라우!" 강력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지소연의 멀티골은 '우승후보' 일본에겐 쓰라린 비수, '다크호스' 북한에겐 달콤한 선물이 됐다. '지메시' 지소연이 남과 북을 함께 구했다. 2008년-2010년 우승국 일본의 3연패를 저지했다. 한국이 일본전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 관중석의 북한 선수단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인공기를 펼쳐든 채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관중석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한국대표팀과 운동장 한모퉁이에서 조우했다. 남북의 젊은이들은 스스럼없이 하나가 됐다. 서로를 껴안으며 뜨겁게 환호했다. 동아시안컵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의 승리도, 북한의 우승도 '드라마'였다. 졸지에 '드라마 조연'으로 전락한 '세계 챔피언' 일본이 망연자실, 고개를 숙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