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한-일전, 축구는 없고 감정 싸움만 있었다

최종수정 2013-07-30 07:53

2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013 동아시아컵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일부 일본 팬들이 '욱일승천기'를 계양하려고 해 경기장 안전요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7.28.

축구는 없었다. 정치적 감정 싸움만 난무했다. 28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013년 동아시안컵 한-일전은 양국간 감정 싸움의 장으로 변질됐다. 스포츠 정신은 갈 곳을 잃었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 먼저 도발했다. 일본 응원단은 욱일기를 경기장 남쪽 스탠드 2층에서 들고 흔들었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군기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사용했던 하켄크로이츠기와 같은 의미다. 욱일기를 잠실벌에서 흔든다는 것은 한국을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뜻이었다.

명백한 잘못임에도 일본의 뻔뻔함은 극에 달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쇠로 일관한채 남탓만 했다. 먼저 한국 응원단인 붉은악마를 걸고 넘어졌다. 붉은악마는 경기 시작 직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를 펼쳤다. 초상화가 내려간 뒤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플래카드 문구를 문제삼았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을 향한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일본축구협회는 즉각 항의했다. 플래카드 철거를 요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제소까지 들먹였다.


2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013 동아시아컵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붉은 악마들이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대형 걸개그림으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7.28.
일본 정부도 나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9일 기자회견에서 "FIFA는 응원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며, 사실관계가 분명해지는 단계에서 FIFA규약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언론들은 지소연(고베 아이낙) 때리기에 나섰다. 지소연은 27일 여자 한-일전에서 2골을 넣으며 한국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지소연은 "축구를 하면서 일본이 한국 축구를 밑으로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지소연이 일본 생활을 하면서 무시와 차별을 당했다'고 왜곡보도했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지소연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28일부터 시작된 상황이다. 한-일 감정이 축구를 통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여야 한다. 정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붉은악마의 행동, 민족적 감정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과 과정이 잘못됐다. 축구장은 정치적 감정을 표출하는 장소가 아니다. FIFA가 정치 종교 상업적 행동을 금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축구장은 순수한 스포츠와 정정당당한 대결의 장이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다. 도를 넘어선 잘못된 정치적 표현이었다. 분명 붉은 악마는 정치적 단체가 아니다. 물론 일본 응원단의 만행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에 대응하는 대한축구협회도 문제가 많았다. 대한축구협회는 플래카드가 내걸리자 바로 붉은악마를 찾아가 철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설득보다 강제 철거를 시도했다. 전반 내내 붉은악마와 보안요원들은 실랑이를 벌였다. 하프타임 때 협회 고위 관계자가 직접 붉은악마를 찾았다. 이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한국 축구를 위한 조직인지 의심해볼 대목이었다.


이후 붉은악마는 플래카드와 걸개를 걷었다. 동시에 응원도 거부했다. 붉은악마의 침묵에 관중들은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외쳤다. 하지만 붉은악마가 동참하지 않으면서 힘을 잃었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은 후반전 내내 일본 응원단의 함성과 노래 소리만이 넘쳤다. 흡사 일본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같았다. 너무도 실망스러운 장면이었다.


2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013 동아시아컵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붉은 악마들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7.28.
붉은악마의 회칙 2조 1항에는 '각급 축구 대표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한국 축구 발전과 각급 국가대표팀의 승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2항에는 '국가대표팀의 서포터로서 각급 대표팀의 경기에 참여하여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동호회'라고 존재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날 행동의 그 무엇도 설명이 되지 않는 회칙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민족 감정은 더 뜨거운 응원으로 표출해야 했다. 축구장에서 울려퍼져야 할 건 정치구호가 아니라 하나된 "대~한민국"의 응원 목소리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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