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국축구는 스포츠 외교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었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와 관련해 대한축구협회가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저자세 영문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비신사적인 세리머니'라는 해명 이메일의 제목부터 사과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과하는 태도가 아니었다'는 축구협회의 기존 해명과 달랐다. 또 전체적으로 박종우 행동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표현이 다수 들어 있었다. 특히 '우리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 너그러운 이해와 아량을 베풀어달라'는 굴욕적인 표현도 있었다.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은 이 문제로 국회 문방위로부터 대한체육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까지 받았다.
1년여가 흘렀다. 축구협회는 또 다시 스포츠 외교가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일본이 지난달 28일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붉은 악마'가 내건 현수막을 꼬투리잡았다. 이날 붉은 악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안중근-이순신의 그림이 그려진 통천을 내걸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축구협회는 경기가 끝난 직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에 항의 공문을 제출했다.
일본 언론들도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 응원 시의 정치적 주장을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도 나섰다. 관방장관과 문부장관이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EAFF는 30일 축구협회의 입장 제출을 요구했다.
축구협회는 당당했고, 소신있었다. 굴욕적인 저자세는 없었다. 축구협회는 31일 일본의 도발을 먼저 지적했다. 협회는 "욱일기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역사적인 아픔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이다. 그런데 일본응원단은 이날 경기 시작 직후 대형 욱일기를 휘둘러 우리 응원단을 크게 자극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축구협회는 문제 발생 후 즉시 해결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붉은악마의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축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협회는 "이번 사태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또한 축구경기 도중 벌어진 일인 만큼 양국 축구협회가 서로 충분히 협의해 해결해 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고위관리까지 한국을 비난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일본 응원단이 대한민국 수도 한 가운데에서 대형 욱일기로 응원한 사실은 외면한 채 한국측의 행위만을 부각시키는 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축구협회의 대응은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선거 공약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1월 정몽규 회장은 3대 핵심공약 중 하나로 '국제경쟁력 확보'를 주장했다. 실추된 한국축구의 외교력을 되살리겠다는 뜻이었다. 한국축구 외교력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2011년 1월 FIFA 부회장 연임에 실패한 뒤 약세를 면치 못했다. 국제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국제대회 성적은 좋았지만,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