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가는 길이 열렸다. 대한민국 A대표팀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에서 0대0으로 비겼지만, 같은날 이란과 2대2로 비긴 시리아를 승점에서 앞서며 2위로 본선 직행권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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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절반성공 신태용호, 완전성공의 길은?
'소방수' 신태용 감독은 어쨌거나 '월드컵 진출'이라는 주어진 미션을 해결했다. 이란, 우즈벡전 모두 0대0 무승부. 지지 않는 축구, 골을 먹지 않는 축구를 한다고 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하지만 팬들의 눈높이는 달라진지 오래다. 월드컵에 진출한 것만으로 웃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 이번 러시아행을 두고 '월드컵 진출을 강제로 당했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월드컵행은 그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아야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불만스러운 장면이 너무 많았다. 부임 후 쏟아졌던 신 감독을 향한 기대는 이번 2연전을 통해 충족되지 않았다. 변명의 여지는 있다.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 일종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멋지게'는 못했지만 어쨌든 가장 큰 목표인 '본선진출'을 이룬 데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진짜 '신태용호'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다.
이제 신 감독 앞에는 월드컵이라는 필생의 무대가 놓여있다. '비주류'였던 그가 꿈꿨던 무대다. 예선전에서의 '절반의 성공'을 '완전한 성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남은 9개월이 너무나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완전한 성공'은 신태용 뿐만 아니라 한국축구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신 감독이 월드컵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컬 하지만 전술을 버려야 한다. '감독' 신태용이 가장 경쟁력을 갖는 부분 중 하나가 전술이다. 현역시절에도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신 감독은 지도자 변신 후에도 팔색조 전술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현역 감독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전술을 구사한다. 포백과 스리백, 원톱과 투톱을 오가며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전술을 사용한다. '최약체'로 불리며 리우올림픽 본선행 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지난 2015년 카타르 U-22 챔피언십은 신 감독의 탁월한 전술 구사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대회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 감독이 전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생각이 든다. U-20 월드컵이 시작이었다. 신 감독은 기니와의 조별리그 1차전부터 포르투갈과의 16강전까지 매경기 다른 전술을 꺼내들었다. A대표 감독 부임 후 첫 선을 보인 이번 2연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전술이었지만, 그 변화의 폭이 결코 적지 않았다. 아무리 전술 소화 능력이 좋은 A대표팀 선수라해도 단 며칠만에 수비 형태를 바꾸는 것은 모험이다. 현재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독일 조차도 매경기 마다 경기력의 기복이 크다.
연령별 대표팀은 변수가 많다. '묘수'로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신 감독은 몇번이고 그만의 '신공'을 보여줬다. 하지만 A대표팀은 다르다. 아무리 변화무쌍하게 전술을 바꾼다고 해도 기본적인 전력 차를 줄이거나, 넘기 어렵다. 상대의 허점을 찾은 특별한 전술을 찾았더라도 선수들이 소화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우즈벡전이 신 감독에게 좋은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 우즈벡전에서 '변형 스리백'의 중심이었던 장현수(FC도쿄)가 교체아웃되고,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들어온 후에야 경기력이 살아났다. 신 감독이 의도한 플랜A가 아닌 선수들이 가장 잘하는 위치에서 뛰자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훈련시간이 짧은 A대표팀은 복잡한 전술 보다는 단순한 전략이 더 중요하다. 클럽과 달리 '전술가형' 보다는 '동기부여형'이 대표팀 감독으로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감독이 직접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선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대표팀만 오면 작아지는 '손흥민(토트넘) 딜레마' 역시 이 틀안에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해답을 찾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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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 감독의 축구를 들여다봐야 한다. 신태용식 공격축구의 핵심은 '패턴플레이'가 아니다. 성남 시절부터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다. 더 주목할 것은 '자유'다. 신 감독은 공격진에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는 '그린라이트'를 준다. 결국 키를 쥔 것은 공격진의 개인능력이었다. 성남 시절에는 몰리나, 모따 등이 있었다. K리그 수준을 넘는 이들의 활약을 앞세워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FA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대표 시절에는 황희찬(잘츠부르크) 류승우(제주) 박인혁(호펜하임) 등 당시 유럽에서 뛰던 선수들의 능력이 빛났다. 이전 국내파 위주로 나선 평가전에서 고전했지만, 유럽파 합류 후 올림픽대표팀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U-20 월드컵에서는 이승우(베로나)와 백승호(지로나)가 핵심이었다.
신 감독은 개인능력이 좋은 선수를 절대 신뢰한다. 체력이 바닥나지 않는 이상, 가급적이면 풀타임 기회를 준다. 마지막 순간, 한방을 터뜨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 믿음의 대부분은 유럽파를 향한다.
이번 2연전에서도 그랬다. 부상 중이었던 손흥민과 황희찬은 2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 거의 풀타임을 소화했다. 아쉬운 것은 이들의 활약이 썩 좋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격포인트에 실패한 것은 물론, 내용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신 감독은 마지막까지 이들을 교체하지 않았다. 이근호(강원) 염기훈(수원) 이동국(전북) 등 베테랑 K리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선택이었다.
믿음은 좋다. 어차피 한방이 중요한 공격수는 사령탑의 믿음을 먹고 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쟁이다. 경쟁은 팀의 심장이다. 경쟁이 있어야 팀 전체에 피가 원활하게 돈다. 경쟁이 사라지는 순간 팀은 죽은거나 다름 없다.
'무조건 주전'은 없다. 슈틸리케호 역시 경쟁 구도가 사라진 후 무너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럽파는 분명 한국축구의 중심이다. 하지만 이들도 잘 못하면, 팀 분위기를 흐트리면 선발되지 않을수도, 기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표팀이 건강해진다. 누구에게나 발탁의 기회, 출전의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속팀에서 죽어라고 뛰고, 대표팀 와서도 죽어라고 뛴다. 그래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기적도 노릴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