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성환 제주 감독은 현역시절 무명이었다.
팀 전체가 감독에 빙의된걸까. 지금 제주는 마치 '조성환'이 뛰는 것처럼 보인다. 최전방부터 미친듯이 압박을 하고, 쉴새 없이 공수를 오간다. 상대 슈팅에 몸을 날리고,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상대를 괴롭힌다. 어느 누구랄 것도 없다. 주전 선수들도, 모처럼 경기에 투입된 선수들도, 외국인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성실한 팀 플레이와 지지 않겠다는 정신이 만들어낸 하모니, 그 결과가 바로 9경기 무패행진(7승2무)이다.
한때 제주는 화려한 축구의 대명사였다. 짧은 패스 플레이를 앞세운 기술축구가 제주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예쁜 축구', '얌전한 축구'를 한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았다. 그 때문인지 초반 항상 순항하던 제주는 고비를 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2014년 12월 제주의 지휘봉을 잡은 조 감독이 가장 먼저 개선에 나선 것이 '멘탈'이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더 커야한다. 다른 팀이 오렌지색(제주의 유니폼색)만 봐도 질릴 수 있도록 하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
더 크게 공을 들인 것은 백업 선수들이었다. 현역시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조 감독은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원칙을 중요시했다. 가장 열심히 연습한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다. 때로는 이성 보다는 감성에 치우친 선발라인업을 꾸릴때도 있을 정도다. 모처럼 경기에 나선 선수들에게는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또 기회를 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모처럼 나가면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르셀로, 이창민 등에 밀렸던 문상윤은 조 감독의 신뢰 속에 자기만의 역할을 찾았다. '신인' 이은범도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성장했다. 조 감독은 "아직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언제든 제 몫을 할 선수들이 있다"며 웃었다.
지금 제주가 무서운 것은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잘 나갔던 제주는 우라와 레즈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완패와 이어진 징계 등으로 수렁에 빠졌다. 예전의 제주라면 거기서 무너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 감독이 뿌린 씨앗은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이겨내기 위해 선수들 모두 하나가 됐다. 고참들이 먼저 나서 후배들과 회식을 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후배들도 잦은 미팅으로 똘똘 뭉쳤다. 조 감독은 믿음으로 피드백을 대신 했다. 그 결과 가장 필요한 순간, 조 감독이 강조한, 어느 순간에도 승리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 '위닝 멘털리티'가 마침내 제주 선수단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위닝 멘털리티는 경기력으로 표출됐고, 이는 다시 결과로 이어졌다.
조 감독은 제주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선수들도 그 힘을 믿기 시작했다. '조성환' 처럼 뛰기 시작한 제주, 전북과의 선두 경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제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