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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8강행 드라마' 김건희 솔직고백 "자극제 염기훈"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8-05-18 05:59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의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 경기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수원 김건희가 전반 두번째골을 터뜨리고 환호하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8.05.16/



"그의 자리에 서는 순간, 그의 조언이 생각났다."

수원 삼성의 젊은피 김건희(23)는 16일 홈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 울산과의 경기서 올시즌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전반에 연속골을 터뜨리며 3대0 완승을 이끌었다. 두 골 모두 어쩌다 얻어 걸린 것도 아닌, 득점 장면의 모범사례로 기억될 만큼 개인기와 자신감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그의 맹활약 덕분에 수원은 1차전 원정 0대1 패배를 딛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선사하며 7년 만에 8강에 진출했다. 수원 입단 3년차인 김건희는 그동안 프로 무대에서 그저 평범한 공격수였다.

올시즌만 해도 리그 8경기 1골, ACL 조별리그 6경기 무득점이었던 그는 대선배 염기훈(35)이 갈비뼈 골절로 이탈하자 기회를 얻었다. 특히 군 입대(28일)를 앞두고 마지막 홈경기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경기 후 눈물을 흘렸던 김건희는 이튿날(17일) 마음을 추스른 뒤 미처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의 깜짝 활약 뒤엔 숨은 '자극제'가 있었다. 바로 염기훈이다. 수원 입단 3년 동안 공격수 대선배인 염기훈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김건희는 2017년 말 이전과 이후의 염기훈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의 염기훈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팀의 맏형, 주장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둔 2014년 1월 이후 A대표팀과 점점 멀어졌던 염기훈은 태극마크에 대한 미련을 접어둔 상태였다. 전통의 구단 주장으로서 하락세 위기를 겪고 있던 팀을 지키고 후배를 이끌기 위해 주장으로서 임무에만 충실했다.

진중한 성실함이 통했을까. 2017년 후반기부터 사라진 줄 알았던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태용 감독이 염기훈을 재발견하면서 러시아월드컵의 희망도 가시화됐다. 김건희는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하고 다시 준비하면 (염)기훈 형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내 일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2018 K리그1 수원 삼성과 대구 FC의 경기가 1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수원 염기훈이 아내와 함께 관중석에 들어서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5.13/


하지만 염기훈은 월드컵 예비명단 발표(14일)를 5일 앞두고 울산과의 16강 1차전 도중 쓰러졌다. 김건희도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기훈 형이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옆에서 봐서 잘 안다. 형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김건희의 눈물은 곧바로 감동으로 변했다. 부상 이후 염기훈이 자신의 SNS에 올린 인사글을 보고나서다. 염기훈은 부상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도 팀 걱정이 우선이었다. '선수들도 많이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으니 욕을 하더라도 경기장에 와서 욕도 하고 응원도 해주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다. 나도 경기장에 가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요지였다. 김건희는 "자신의 아픔 다스리기도 힘들텐데 팬과 팀 걱정을 더 많이 하다니…, 역시 포스가 다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염기훈 부상 후 첫 대타 출전으로 대구와의 13라운드(13일)에 원톱으로 나섰다. 팀은 이겼지만 골을 넣지 못해 한스러웠다. 이후 김건희는 운명의 16강 2차전에서 비로소 염기훈의 왼쪽 포지션에 섰다. 관중석의 염기훈을 보는 순간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더란다.

3년 간 옆에서 본 선배 염기훈의 파란만장한 순간들, 특히 마음 깊이 새겨뒀던 과거 조언이 떠올랐다. "건희야, 너는 내가 갖지 못한 우월한 피지컬과 득점 기술이 있잖아. 거기에 자신감만 키우면 될 것 같다. '노골'을 먼저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부딪혀봐라."

염기훈을 쓰러뜨린 상대, 울산이라 김건희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대선배의 포지션에서 부끄럽지 않게 뛰고 싶었다. 결국 예전과 크게 달라진 과감한 플레이로 수원팬들을 열광시켰다. 관중석에서 갈비뼈 통증도 잊은 채 연신 환호했던 염기훈은 "마침내 건희가 한 껍질을 깨고 나온 것 같다. 그것도 나의 포지션에서…, 이제 더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악착같이 뛰는 건희를 보니 왠지 짠했다"며 대견해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듯, 염기훈의 존재가 김건희를 춤추게 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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