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2번 포트' 국대가 월드컵 전 풀어야 할 과제

최종수정 2025-11-18 00:14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A매치 평가전. 이강인이 공을 다투고 있다. 대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11.14/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A매치 평가전. 이강인에 파울을 범한 볼리비아 수비진이 이강인의 손을 잡아 끌어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다. 대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11.14/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A매치 평가전. 손흥민이 파울을 범한 이강인을 다독이고 있다. 대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11.14/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A매치 친선경기를 복기해보자. 한국이 좀체 공격 활로를 뚫지 못하던 후반 5분, 이강인은 한국 진영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김진규(전북)가 빼앗은 공을 전달받고는 강하게 전방압박하는 볼리비아 선수 4명 앞에서 탈압박을 시도했다. 공을 요리조리 몰고 하프라인 우측 지점에 다다랐고, 상대의 고의성 짙은 파울에 의해 질주는 멈췄다. 축구팬은 '미친 탈압박', '역시 이강인'이라며 환호했다. '탈압박 하이라이트' 영상이 축구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장면에선 분명 끝까지 소유권을 지키는 이강인만의 공 간수 스킬, 유럽 빅리그에서 볼 법한 탈압박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효율적인 플레이였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이강인이 공을 잡아 파울을 당한 시점까지 걸린 시간은 11초였다. 이강인이 움직인 거리는 단 한 번의 패스로 1~2초만에 공을 보낼 수 있다. 이강인이 드리블을 하는 사이 볼리비아 선수들은 수비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이런 장면이 나온 건 한 번이 아니다. 전반 10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은 한국 골문 쪽으로 드리블을 한 뒤 방향을 틀어 측면에 있는 황희찬(울버햄튼)에게 롱패스를 뿌렸다. 전반 34분, 김문환(대전)의 패스를 받은 이강인은 드리블을 하다 파울을 당했다. 연결고리, 볼 소유권 유지 측면에선 박수를 받을 장면이지만, 문제는 시간과 공을 소유한 위치다. 두 과정에서 이강인이 볼을 소유한 시간은 각각 9초와 12초였고, 공을 잡은 위치는 한국 진영이었다. 4-2-3-1 포메이션의 오른쪽 윙으로 출전한 이강인의 이러한 플레이가 원래 자신의 위치인 상대 파이널 서드에서 이뤄졌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상대 선수 한두 명을 끌어당기는 것 외에는 큰 효과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대한민국-볼리비아전 후반 5분, 이강인이 탈압박하는 장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하나같이 멈춰서있다. 중계화면 캡쳐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대한민국-볼리비아전 전반 10분, 한국 진영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패스 줄 곳을 찾는 이강인. 공을 잡아 패스할 때까지 9초가 걸렸다. 중계화면 캡쳐
여기서 '국대 이강인'과 '파리생제르맹(PSG)의 이강인'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이강인은 한국 진영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딥라잉 플레이메이킹에 힘쓰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깜짝 준우승을 이끌 때처럼 '혼자 힘으로 경기장에서 차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강인의 윙어로서의 장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강인은 지난해 9월 이후 A매치 14경기에서 단 1골에 그쳤다. 이전 14경기에선 8골을 넣었다. PSG의 엔리케호에선 홍명보호와 비슷한 포지션을 맡지만, 공을 받는 위치와 오랫동안 머무리는 위치가 상대 박스에 더 가깝다. 대표팀 합류 직전에 치른 10일 올랭피크 리옹과의 프랑스 리그앙 경기(3대2 승)에서 크로스 5개를 성공시킨 이강인은 볼리비아전에선 단 한 개의 크로스도 올리지 못했다. 리옹전 패스 성공률은 88%, 볼리비아전에선 72%로, 큰 차이를 보였다. 주고받는 짧은 패스보단 실패율이 높은 중장거리 패스를 많이 시도하는 과정에서 성공률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유효슈팅도 단 1개에 그친 이강인은 도리어 피파울(6개), 지상경합 성공(9개) 횟수가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이강인의 천재성이 현 홍명보호 전술에선 발현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국가대표에선 주변 동료들과도 때때로 불협화음을 보인다. 볼리비아전 후반 5분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이강인이 공을 잡았을 때 주변에 있던 6~7명의 동료는 하나같이 멈춰서서 이강인의 '드리블 쇼'를 구경했다. 1~2명이라도 패스를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이강인이 '외로운 탈압박'을 위해 11초 동안 애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강인과 라이트백 김문환은 서로의 습관과 플레이스타일에 대한 숙지가 덜 된 건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다.


'11초짜리 탈압박 드리블'은 이강인의 욕심인가, 홍명보호 전술 문제인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A매치 평가전. 이강인이 슛팅을 시도하고 있다. 대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11.14/
이강인이 한두 칸 내려와서 플레이할 때, 윙어처럼 깊숙이 오버래핑에 나서는 풀백의 존재는 필요하다. PSG의 아치라프 하키미가 좋은 예다. 단순하게 사이드라인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론 이강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어렵다.

전술적 매만짐도 필요해 보인다. 이강인은 스스로 내려와서 공을 받길 원하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재성(마인츠)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미드필드까지 자주 내려온다. 볼리비아전을 예로 들면, 공격을 담당해야 할 '3'과 '1' 중 2명이 하프라인에 걸쳐있다. 황희찬과 손흥민이 상대 좌측면을 파고들어도 반대편에 머무는 선수의 숫자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키미급 공격력을 지닌 풀백이 없는 한, 한쪽 측면 공격이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강인이 하프라인 아래에서 동료에게 공을 연결한 후 골을 넣기 위해 상대 박스까지 가려면 40~50m를 전력질주해야 한다. 골과 어시스트 등 마무리 작업에 온 에너지를 할애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축구는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게임이다. 한국이 A매치 친선경기, 나아가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 성적을 내기 위해선 확률이 높은 싸움을 해야 한다. 이강인은 현재 대표팀의 '엑스팩터'(X-Factor·경기를 좌우하는 선수, 팀에 승리를 안기는 특별한 능력')다. 2024~2025시즌 한국인 최초 유럽 트레블을 달성한 이강인의 공격력을 더 극대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강인의 최대 임무는 2선에서의 플레이메이킹이지, 3선에서의 잦은 탈압박이 아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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