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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개 양육·훈련에 국고 탕진, 군사만 1만명 동원
▶ 장희빈의 치마폭에 싸여 산 숙종의 반려동물 사랑도 윤 전 대통령 못지 않았다. 숙종은 궐에서 황금빛 고양이 2마리를 거둬 금묘(金猫)라 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고양이 어미는 금덕(金德), 새끼는 금손(金孫)이라 불렀다. 숙종은 금덕이 죽자 '매사묘(埋死猫: 죽은 고양이를 묻으며)'라는 조사(弔辭)를 바치고 홀로 남은 금손을 자식처럼 돌봤다. 조선 왕의 행적을 담은 승정원일기는 "숙종이 죄인을 보고 우신 중국 우(禹) 임금의 어짊을 본받아 금손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덕행이 짐승에 미치도록 힘쓴 것"이라 적었다.
▶ '퍼스트캣'(first cat) 금손의 위세는 대단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금손만 가까이서 임금을 모시고 밥을 먹었고 용상 곁에서 잠잤다"며 숙종 외에 아무도 금손을 건드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금손은 숙종에게 사랑을 받은 것 이상을 '집사'에게 돌려줬다. 숙종이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한 채 빈소 옆에서 슬피 울다가 굶어 죽었고, 이를 갸륵하게 여긴 숙종의 아내 인원왕후는 금손에 비단 수의를 입혀 남편 무덤(명릉) 곁에 묻었다.
▶ 왕실의 개도 상팔자였다. 특히 폭군 연산에게 개는 사람보다 존귀한 존재였다. 연산군은 궐내에 개와 매 등 반려동물을 돌보며 훈련하는 조준방(調準坊)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군인 1만명을 배치했다. 연산군은 포악한 자신을 닮은 사나운 대형견을 선호했는데, 틈만 나면 개들을 이끌고 경기도 광릉 사냥터로 행차해 국고를 탕진했다. 연산군은 사냥견들이 생포하는 짐승을 왕의 목장인 사복시로 옮겨 특별 관리를 받도록 했다.
▶ 윤 전 대통령은 서초동 아파트에서 키우던 개 4마리와 고양이 3마리 외에 취임 후 4마리를 더 분양받고 관저에서 키웠다. 그는 대선주자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욕을 먹는 와중에도 개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리는 강한 부성애를 드러냈고, 아내 김건희 씨는 보신탕을 금지하는 개식용 금지법을 관철해 동물권 단체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켠에선 경제위기 속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가 하는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 이번 '개 수영장' 논란을 계기로 대통령 반려동물 개체 수를 제한하고 관련 예산 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봤으면 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쁘다는 사람이 서너마리도 아니고 십수마리를 공적 공간에서 키우고 공무원까지 붙여서 보살피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대통령도 인간인지라 반려동물에게서 위안을 얻는 걸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도 국민 대부분이 용인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 제왕에 비견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어찌 됐든 왕은 아니지 않은가.
jah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