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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못볼지도] 울산 명물 '방어진 용가자미' 씨 마를라

기사입력 2025-06-14 10:49

[촬영 장지현]
[촬영 장지현]
[촬영 장지현]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4년 2천329t 잡혀 역대 최저…3년 만에 어획량 반토막

어민들 "서식 수심 눈에 띄게 깊어져"…"향후 1∼2년 고비, 보호책 시급"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지난 10일 새벽 4시 30분 울산 동구 방어진항.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항구는 정박한 어선들의 불빛으로 환했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4일 만에 바다에서 돌아온 어선들이 하나둘 입항하기 시작했다.

하역 준비를 마친 어선에서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외국인 선원 대여섯 명이 가자미로 가득 채운 박스를 팰릿에 차곡차곡 쌓으며 분주히 움직였다.

대구, 기름가자미, 가오리 등 다른 생선들도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방어진 명물로 알려진 용가자미였다.

열댓 개씩 쌓인 박스를 지게차가 한꺼번에 들어 위판장으로 옮기자, 흥겨운 트로트가 흐르는 위판장에서 작업자 10여명이 쪼그려 앉아 갓 들어온 용가자미를 크기별로 1단부터 5단까지 나눠 분류했다.

이렇게 분류를 마친 가자미는 매일 오전 6시와 7시 두 차례 경매를 통해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최근 기후변화 속에서 방어진항의 이런 풍경을 다음 세대는 만나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전국 유통량 70% 차지하는 울산 명물…작년 어획량 역대 최저

용가자미는 납작한 몸과 한쪽으로 몰린 눈을 가진 가자미류 어종이다. 등은 암갈색에 배는 새하얗고, 배 양쪽에서 꼬리까지 자색 띠가 이어진다.

다른 가자미류보다 식감이 단단하고 맛이 담백해 회, 구이, 조림, 반건조 형태까지 다양하게 소비된다. 사계절 내내 잡히지만, 특히 겨울철엔 살이 오르고 알이 꽉 차 귀한 대접을 받는다.

특히 방어진에서 잡히는 용가자미는 전국 유통량의 70%를 차지할 만큼 품질과 물량 모두에서 우위를 점했다.

어민들 사이에선 지역경제를 먹여 살리는 효자 품목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방어진항 용가자미 어획량은 2021년 4천369t에서 2022년 3천477t, 2023년 3천430t으로 매년 줄었다.

지난해엔 2천329t까지 떨어지며 직전 최저치인 2천377t(2011년)을 밑돌았다.

올해 들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해 1∼5월 어획량은 1천469t으로 작년 동기보다도 적다.

방어진항 전체 위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급감했다. 2021년 50.4%(142억원)에서 2024년 24.6%(91억원)로 내려앉았다.

◇ 어민들 "예전보다 멀리 EEZ 근처까지 가도 많이 안 잡혀"

방어진항을 거점으로 수십 년간 활동해온 어민들 사이에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위판장에서 만난 근해자망 어선 선주들은 최근 몇 년 새 가자미 분포 수심이 눈에 띄게 깊어졌다는 데 입을 모았다.

부창호 선주 송주영(49)씨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근처까지 가도 예전처럼 잡히질 않는다"며 "수온 변화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수심 80m 안팎에서도 어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200∼300m까지 그물을 내려야 겨우 가자미를 만난다는 것이 송씨 설명이다.

방어진 위판장에서 가자미 분류 작업을 하는 한 작업자는 "7년째 방어진항에서 일하고 있는데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가자미 양이 거의 절반으로 준 것 같다"며 "언제까지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바다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도로, 관측 이래 최고였다.

동해 18.84도, 서해 17.12도, 남해 20.26도 등 모든 해역이 이전 기록을 경신했다.

수온 변화로 인해 급증한 해파리들이 어업 활동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윤병구 울산근해자망선주협회장은 "해파리들이 무게가 나가다 보니 그물이 찢기는 경우도 있고, 물고기보다 해파리가 더 많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 비롯해 복합적 요인 작용…"금어기 도입 필요"

어획량 급감이 기후변화 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용가자미는 5~6년 단위로 어획량이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생태적 사이클이 있다"며 "작년은 그 주기상 저점에 해당하는 해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만큼, 올해와 내년 어획량이 회복될지가 관건이다.

윤 박사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1∼2년 안에 회복세가 없거나 어획량이 더 떨어진다면 대응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정 해역에 집중된 조업 활동, 어획 금지 체장(몸길이) 확대 등도 어획량 감소의 요인으로 꼽힌다.

윤 박사는 "금지 체장이 기존 17cm에서 올해부터 20cm로 강화되며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줄었다"면서 "어민들 입장에서는 조업 효율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온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윤 박사는 "최근 몇 년간 오른 수온이 가자미가 서식하는 수심과 어장 분포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개체 성숙도나 산란의 양은 수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금어기 설정 등 용가자미 자원 관리가 필요하다는 자성 어린 목소리도 나온다.

윤병구 협회장은 "수온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자원 보호는 할 수 있지 않나"라며 "금어기 도입이 당장은 불편할지 몰라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jjang23@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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