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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일본 음식점도 들어섰던 부산…"생활문화 상호 영향"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부산과 일본을 연결하는 음식은 현재도 여럿 존재한다.
많은 한국인이 지금도 일본에 가면 꼭 찾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명란이다.
'명란의 도시'라고 하면 일본 후쿠오카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런데 사실 명란의 발상지는 일본이 아니라 부산이다.
일부 문헌에는 조선시대부터 명란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전해진다.
당시 동구에는 원산에서 잡은 명태를 보관하던 한강 이남 최대 물류창고 '남선창고'가 있었다.
일본과 조선 내륙 무역의 중계지였던 부산에 전국 각지 특산물이 집결했고, 특히 함경남도 원산의 명태가 남선창고에 모인 뒤 전국으로 유통됐다.
이곳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은 품삯 대신 대구알과 아가미 등 부산물을 임금으로 받았는데, 이를 젓갈로 담가 먹으면서 명란젓이 널리 퍼졌다.
당시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 가와하라 도시오 씨가 명란젓을 맛본 뒤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 최대 명란젓 기업으로 알려진 '후쿠야'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 전통 발효 기술이 아닌 소금 등으로 만든 염지제를 물에 녹여 가염하는 액염법을 이용해 일본식 명란젓으로 재탄생시켜 대중화했다.
동구 관계자는 "명란의 발상지가 부산 동구라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많이 알릴 것"이라며 "다만 부산 사람들에게 한때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남선창고는 부산 최초의 근대적 물류창고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인 어묵도 대중화되기까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과거부터 부산은 어묵의 주재료인 조기, 갈치 새끼 등이 연근해에서 많이 잡혀 어묵을 만들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1930∼1950년대 당시 부산 앞바다에는 물고기가 넘쳐났는데, 과장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바닷가에서 200m만 걸어 나가도 생선을 바가지로 퍼 잡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만들어 먹을 만큼 부산에서의 어묵 역사는 오래됐지만, 본격적으로 어묵이 상품화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역수입된 오뎅바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묵, 무 등을 넣고 만든 탕 요리인 오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이를 본 한국인이 부평동 깡통시장에 최초의 어묵 가게 '동광사'를 설립한 것이다.
이후 1950년대 들어서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부산 유명 어묵 기업들이 생겨났다.
조선인 관리가 왜관에 들어가면 일본 측은 일본 음식을 접대했는데, 대마도산 밀감과 우동면을 신선로에 끓여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가연 경성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항도부산에 실린 논문 '개항장 부산 일본 거류지의 소비공간과 소비문화'에서 "일본인들의 이주와 함께 거류지에는 다양한 일본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섰고 아울러 서양 음식점도 생겼다"며 "전근대 시기 초량왜관은 일본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기에 양국의 생활문화, 풍속 등이 상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psj19@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