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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사회에 미치는 부담은 여러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쓰이는 건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이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집계를 보면, 자살로 인한 한국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2023년 기준) 약 15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 해 국가 예산의 2%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유가족의 정신적 고통과 생산성 손실, 의료 및 구조 비용, 보험 지급, 사후 지원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다음으로는 우리 사회가 자살로 잃은 시간을 계산하는 '조기사망 수명상실 연수'(years of life lost, YLL)라는 게 있다. 이 지표는 단순 사망률이 아니라 '얼마나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었는지'를 반영함으로써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정밀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분석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자살로만 매일 평균 573만 시간에 달하는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16일 국제학술지 '영국 의학 저널 오픈'(BMJ Open)에 실린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군의무사령부 공동 연구팀(윤석준, 김근아, 김영은)의 연구결과를 보면, 2000∼2018년 한국인의 자살로 인한 조기사망 수명상실 총연수는
는 429만8천886년(남 284만3천243년, 여 145만5천643년)으로 추산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 조기사망 수명상실 연수가 407만2천325년이라는 분석보다도 많은 수치다.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매일 573만 시간, 총 37억7천만 시간의 삶이 스스로에 의해 사라진 셈이다.
자살 사망자의 평균 수명상실 연수는 18.65년(남성 18.06년, 여성 19.93년)이었다. 자살자 1명이 평균 18년 넘는 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등졌다는 의미다.
더욱 문제인 건 자살자 증가 추세에 따라 수명상실 연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2000년만 해도 인구 10만명당 자살에 따른 수명상실 연수가 285년(남 387년, 여 183년)에 머물렀지만 2018년에는 1.7배 늘어난 482년(남 664년, 여 300년)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또 이 연구에서는 사고와 질병 등을 포함한 총 조기사망 중 자살로 인한 수명상실 비율이 2007년 이후 계속해서 10%를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성별 자살로 인한 수명상실 연수는 2012년 이후 2018년까지 일관되게 남성이 여성보다 약 2배 높게 나타났다.
연령대별 수명상실 연수는 남성의 경우 25∼39세와 40∼59세에서, 여성의 경우 25∼39세와 15∼24세 연령대에서 특히 높았다. 고졸 이상보다 중졸 이하 학력에서, 기혼자보다 미혼자에서 수명상실 연수가 2∼3배 높은 것도 특징이었다.
연구팀은 이번 통계가 자살로 인한 질병 부담을 포괄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조기사망 수명상실 연수 지표를 사용한 첫 번째 연구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자살 예방 정책이 특정 고위험군이나 정신건강 등 일부 위험 요인에만 집중돼 있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교수는 "자살은 예방할 수 있는 사망인 만큼 자살로 인한 실제 질병 부담을 포괄적인 지표로 측정함으로써 성별, 연령, 교육 수준, 혼인 상태를 기반으로 취약 계층에 대한 효과적인 맞춤형 건강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나온 430만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놓쳐온 생명들의 총합이며, 지금도 누군가는 그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다.
"괜찮니?"라는 한마디, "함께하자"면서 손내밀기, 그리고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국가의 개입과 제도적 보완이 절실한 이유다. 자살로 잃는 시간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국가와 사회가 모두 나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다.
bi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