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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7세 함께 음식 만들고 식사까지…"혼밥 안 하니 좋아"
"함께 식사, 사회적 연결성 높아…외로움 줄이는 데 긍정적"
지난 11일 은평구 역촌동 주민센터 3층 제2강좌실에서 만난 50대 배모 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지자 이곳에는 중장년 남녀 20명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행복한 밥상'의 일환인 '은빛SOL다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2022년 첫선을 보인 행복한 밥상은 40~67세 1인 가구가 함께 음식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이다. 고독사와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기능을 하는 현장이다.
이날 만든 요리는 '고추장물'. 경상도 지역에서 여름에 즐겨 먹는 반찬으로, 밥에 비벼 먹거나 양배추 쌈에 양념장으로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멸치고추다짐', '멸치고추다대기' 등으로도 불린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 쉽게 요리과정은 간단한 편이다. 재료는 풋고추, 청양고추, 훈연 멸치, 마늘, 간장, 까나리액젓, 요리술, 물, 들기름.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과 함께 조리면 된다.
참가자들은 4명씩 5조로 나뉘어 역할 분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어느새 "멸치 내장 손질은 이렇게 하면 된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도마 밑에 행주를 까는 게 좋겠다" 등 서로 조언을 건넸다.
요리 경험이 많지 않아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기자는 이날 1시간 20분 동안 훈연 멸치 내장을 제거한 뒤 가위로 멸치를 잘게 자르기만 했다.
요리가 끝난 뒤에는 간단한 식사가 이어졌다. 조원끼리 둘러앉아 고추장물이 곁들여진 참치 비빔밥을 함께 먹었다. 자연스럽게 "어디 살고 있냐", "비슷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냐" 등의 얘기가 오갔다.
이날 프로그램은 요리와 식사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고추장물을 조별로 500g 병 4개와 300g 병 6개에 나눠 담았다. 이 가운데 500g 병은 참가자들이 하나씩 가져갔고, 나머지 300g 병 30개는 사회복지센터 '우리동네키움센터 은평7호점'에 기부됐다.
배씨를 비롯한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았다.
배씨는 "외로움도 해소되고 요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게 돼서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전영주 씨는 "혼자 집에 있지 않고 나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좋다"며 "여기서 배운 레시피를 집에서 써먹어 볼 수 있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은평구에서는 (프로그램이 좋다고) 입소문이 났는데,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모 씨는 "1인 가구니까 끼니를 잘 못 챙겨 먹는다"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3~4일 정도는 반찬 걱정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여 가능 횟수가 연 2회로 제한돼 있어서 아쉽다"고 했다.
또 황모 씨는 "다른 사람한테 기부도 하고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반찬도 얻을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은평구청 가족정책과 관계자는 "작년 12월 기준 만족도 조사 결과, 함께 한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했다는 의견이 다수"라며 "앞으로도 1인 가구가 고립되지 않고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행복한 밥상은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건강한 밥상은 서울 11개 자치구에서 진행되고 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서울시 1인 가구 포털 '씽글벙글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참여 가능 횟수는 자치구별로 다르다. 올해 '행복한 밥상'은 총 3천500명, '건강한 밥상'은 800명을 모집한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8일 광주시 북구는 '더 빛나는 나를 위한 프로젝트, 싱글업'이라는 중장년 1인 가구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홀로 거주 중인 40~64세 중장년 참여자에게 가정식 요리 교실·필라테스·목공예 등 취미·건강 프로그램 등 생활 밀착형 교육을 제공한다.
외로움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시간당 약 100명이 사망한다고 경고했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노년층의 3분의 1, 청소년의 4분의 1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 1일 시작한 외로움 예방 프로그램 '365 서울챌린지' 가입자 수는 일주일 만에 1만7천명을 돌파했다. 가입자 연령대는 30∼50대가 전체의 76%를 차지했다.
장은진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16일 "함께 식사한다는 건 서로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하는 등 사회적 연결성이 높은 일"이라며 "1인 가구끼리 연결된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희망자에 한해 별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준다면 프로그램 취지가 더 살 것"이라며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할 때는 이웃끼리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aemo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