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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해발 1천100m 고지에 펼쳐진 고랭지 배추밭은 녹음이 짙은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기후 온난화 그늘이 이곳 안반데기 배추밭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매년 고랭지 경작지가 조금씩 감소하는 가운데 가뭄, 자연재해와 같은 돌발 변수도 매해 발생하고 있다.
2050년대가 되면 현재 고랭지배추 재배 면적의 97%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매년 수급 불안 대응 및 가격 안정을 위해 수매와 같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고랭지배추 생산 기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우려도 커진다.
◇ 안반데기서 만난 농민들 "올해 유달리 심해"
고랭지 배추 출하 시기인 지난달 말 강릉 안반데기를 방문했다.
예년 같으면 짙은 초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일부 밭에서는 자라다 만 배추가 축 늘어져 있거나, 벌겋게 마른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안반데기를 한번 둘러보고 정상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잠시 쉬다 보니 주민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한 주민이 "요새 농사가 어떻냐?"고 묻자 옆에 있던 농민 김모(78) 씨가 대답했다.
"하늘만 보고 사는 거지"
김씨는 카페에서 나와 안반데기 밭을 바라보며 푸념했다.
그는 "작년에 날씨가 조금만 도와줘서 한숨 돌렸는데 올해는 너무 심하다"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여름 배추는 고랭지에서도 못 짓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배추는 저온성 작물로, 여름철 고온에 약하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충분한 수분이 확보돼야 줄기와 잎이 제대로 자라고 속이 단단하게 찬다.
그렇지 않으면 배춧속이 가운데서부터 녹아버리는 이른바 '꿀통 배추'가 된다.
여름철 고랭지 배추가 맛 좋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강원 고랭지조차도 여름철 기온이 뚜렷하게 오르고, 국지성 집중호우와 가뭄이 반복되며 여름 배추 재배의 최적지라는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강릉 안반데기, 태백 매봉산·귀네미, 삼척 하장, 평창 대관령·진부, 정선 임계 등 도내 다른 고랭지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후 이상은 배추 생육을 방해할 뿐 아니라 병해충 피해도 키운다.
고온다습한 환경이 이어지며 '반쪽시들음병' '시스트선충' 등 각종 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태백 매봉산은 토양 병해충 확산으로 농민들이 고랭지 배추 재배를 기피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근 고랭지 지역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 재배 면적 점차 감소해 2090년대 0.3%까지 줄어
배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생산할 수 있지만 계절별로 주산지와 주요 소비처도 다르다.
강원도 고랭지와 준고랭지 지역에서 대부분 생산하는 여름 배추는 통상적으로 추석 성수기 물량을 책임진다.
그러나 매년 폭염과 폭우 등 이상 기후로 생산량 변동이 발생,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농업 당국이 매년 이맘때 고랭지 농가를 방문해 작황 상태를 점검하는 이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도 이달부터 평창과 정선, 강릉 등 주요 고랭지 지역을 중심으로 여름철 폭염과 호우 등으로 인한 배추 수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여름 배추 4천t(톤)을 수매하기로 결정했다.
aT는 수매한 배추를 비축했다가 수급 불안이 발생하면 시장에 공급한다.
이제는 이러한 고랭지 배추도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이 지난해 10월 농촌진흥청에서 제출받은 '배추 재배면적 전망 예측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대 고랭지배추 재배 적합지는 9만3천ha로 추정됐다.
이는 조사 기준연도(2000∼2010년) 평균치의 3%에 불과한 수치다.
2090년대가 되면 고랭지배추 재배 적합지는 기준연도의 0.3%인 4천ha까지 축소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있다.
이러한 전망치는 현재 재배되는 품종과 재배방식 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조건으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도출한 결과다.
◇ 농업 당국, 고랭지배추 연구실 신설 "전방위적인 지원 앞장"
농업 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단기적인 대안 마련과 함께 중장기적인 대책 수립을 통해 기후 변화 등에 대응하고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는 지난해 9월 1일 '고랭지배추연구실'을 신설했다.
전문 연구 인력을 배치해 재배, 병해충 방제, 토양 관리 등 핵심 분야 연구를 집중하여 수행하고 있다.
이영규 농촌진흥청 고랭지배추연구실장은 "기후 변화와 토양 병해충 발생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선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후 온난화 등으로 고랭지조차 기온이 오르면서 배추 생육이 어렵고 병해충 피해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배 기술, 병해충 관리, 품종 개발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전방위적인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현장에서 농가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정보를 개발 및 보급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ryu@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