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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연합뉴스) 정종호 기자 = '저 또한 피해를 겪은 한 사람으로서, 핵무기로 인한 커다란 상실감과 고통에 공감합니다."
마셜제도 피폭 4세인 베네틱 카부아 매디슨(30) 씨는 이날 합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5 합천비핵·평화대회'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마셜제도는 미국의 핵실험장으로 활용됐다"며 "(실험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으며 질병을 유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핵실험으로 마셜제도 주민 3분의 2 이상이 조국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져 살고 있다고 설명하며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희생된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전했다.
1946∼1958년 마셜제도에서는 총 67차례의 핵실험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디슨 씨는 미국 공립학교 재학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히로시마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본 적 있지만, 마셜제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폭격으로 피해를 본 조선인들, 핵실험 낙진 피해자 등 많은 이들이 핵 피해를 겪었음에도 그 어떤 내용도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자리를 통해 핵 생산 자체가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핵 피해 최전선 공동체들과 연대자들의 전 지구적 교류를 구축해 갈 수 있길 바란다"며 "핵무기와 핵에너지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핵실험이 진행된 폴리네시아(마우히 누이)가 조국인 테아투아헤레 테이티-기에를라흐(25) 씨도 연단에 올라 "우리 가족은 방사선 노출로 암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며 "모든 이웃이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핵실험 피해뿐 아니라 우라늄 광산 노동자들의 피폭 증언도 이날 대회에서 나왔다.
반핵평화활동가인 이사이아 몽곰베 몸빌로(52) 씨는 콩고 민주공화국 카탕가 지역에서 1942∼1945년 3천300t 이상의 우라늄이 비밀리에 채굴돼 미국으로 운송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산 노동자들은 방사능에 노출된 채 방호 장비 없이 위험한 환경에서 강제노동했다"며 "광산에서 발생한 폐기물로 주민들은 수세대에 걸쳐 암과 기형아 출생 등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이날 증언에서는 카자흐스탄 피폭 3세 등도 나서 핵의 위험성을 알렸다.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을 나누고 비핵·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열린 이날 대회는 2012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 주제는 '피폭 80년! 기억과 기록, 평화연대'로 해외 피폭자 등 증언뿐 아니라 원폭 피해자들의 가족사를 담은 연극 '불새' 공연 등 비핵·평화를 염원하는 행사도 함께 열린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약 70%가 합천 출신으로 알려져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
jjh2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