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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양당 구조 깨고 파란 일으켰으나 개혁 추진하다 인기↓
에펠탑 전망 명소 '트로카데로 광장'에 모인 교민들은 플래카드와 각종 손팻말을 들고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촉구했다.
현지인들도 알아볼 수 있도록 프랑스어로 '윤석열 탄핵'을 적어 온 교민도 있었다.
대표 관광지인 이곳에서 한 무리의 아시아인이 시위하는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 만했다.
현장에서 몇m 떨어진 곳에서 이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한 프랑스 노부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한국의 정치 상황을 대략 설명해주자 "한국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일을 했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동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 대통령이 사임할 때 마크롱 대통령도 함께 데려가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과 탄핵을 요구하는 외침이 프랑스 전역에서 분출됐다.
수도 파리를 비롯한 전국에서 프랑스 정부의 긴축 재정 정책에 반발하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 측 추산 50만명, 집회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인들의 마크롱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분노는 제3자인 외국인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
전략 컨설턴트라는 엘루아(29)씨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임기 동안 펼친 정책을 "반사회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로 인해 사회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또 "현재 정부가 연달아 무너지고 있는데, 마크롱은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정책과 통치에 대한 집착, 그것도 상당히 일방적인 통치에 대한 집착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탄핵당하는 것"이라며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정당이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살 대학생 루이즈씨도 지금 프랑스에선 "민주주의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기 총선에서 좌파 정당들이 뭉친 연합전선이 의회 내 1위 세력이 됐음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여전히 좌파를 배제한 채 자기 정치를 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의료, 교육 등 공공 서비스가 붕괴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예산 배분이 노동자 계층이 아닌 기업주들의 금고만 채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초부유층에는 충분히 과세하지 않으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을 불리하게 만드는 예산 삭감 정책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처럼 프랑스인들의 '동네북'이 되리란 건 8년 전만 해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프랑스 정치판에 파란을 일으키며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프랑스 대권을 거머쥐었다.
공화당과 사회당이라는 거대 양당 구도를 뛰어넘어 새로운 중도정치를 펼쳐 프랑스를 개혁하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유권자들은 기대를 걸고 표를 줬다.
그러나 2018년 11월 유류세 인상, 2019년과 2023년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해엔 극우세 확산을 막겠다며 깜짝 의회 해산을 발표했고, 그로 인해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좌파가 의회 내 제1 세력이 됐음에도 관례를 깨고 총리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후 어렵사리 정부를 구성했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공 지출 감축을 골자로 한 예산안을 추진하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정책 흐름을 지켜본 프랑스인들은 그를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비판한다.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거부감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3일 여론조사 업체 베리안과 르피가로매거진이 공개한 설문 결과 마크롱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이는 2018년 말 유류세 인상 방침에 반발해 전국적으로 노란 조끼 시위가 벌어졌을 때보다도 더 낮은 역대 최저 지지율이다.
sa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