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스토리] 자산 토큰화는 도대체 왜 할까?

기사입력 2025-10-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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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탈중앙·탈국가 신종 증권…수수료 아끼고 전 세계 24시간 자동 매매 가능

인기 주식·펀드 사고 코인 간편 결제…암호화폐와는 '치킨과 맥주' 궁합

"금융시장의 다음 빅뱅"…美서도 제도화 선례 없고 韓 외환 장벽 등은 난관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외계어'가 주변서 마구 들리는 것은 곤혹스럽다. 금융투자 업계에서 최근 유행하는 '자산 토큰화(token化)'가 그렇다.

유명 금융사들은 주식, 펀드, 채권 등 실제 세상의 자산(Real-world Asset·RWA)을 토큰으로 만들어 파는 시도에 한창이다.

미국의 핀테크 플랫폼 '로빈후드'가 올해 6월 유럽에서 '스페이스X'와 '오픈AI' 등 유명 비상장사 주식을 토큰으로 유통한다고 밝히면서 자사 주가가 13%나 폭등한 것이 대표적 예다.

토큰화는 비상장 주식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미국 나스닥은 지난달 초 미국 주요 거래소로는 처음으로 토큰화한 상장주와 펀드를 거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금융 당국에 제안서를 냈다.

국내의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지난 달 미국 테크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국외 유통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토큰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대체 토큰이 뭐길래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일상에서 '토큰'은 실물을 대신하는 '증표'의 뜻으로 흔히 쓰인다. 중장년층이라면 1990년대까지 쓰인 '버스 토큰'이 떠오를 것이다. 중간에 구멍을 낸 동전처럼 생긴 버스 토큰은 현금 운임을 대체하는 티켓 역할을 했다.

더 젊은 세대라면 카드나 보드게임의 토큰도 익숙하다. 현금 내는 양 '베팅' 수단으로 썼던 검은 바둑알이나 플라스틱 칩이 다 토큰이었다.

그런데 자산 토큰화의 토큰은 의미가 다르다.

이 토큰은 안정성과 편의성을 대폭 강화한 전산상의 '소유 증표'다. 주식이나 펀드 등의 보유 사실을 대외적으로 증빙하는 수단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때 토큰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유통되는 전산망인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증표다.

블록체인 망의 핵심은 탈(脫) '중앙성', 탈(脫) '국가성'이다.

'분산원장'이란 기술을 통해 망의 한복판에서 '홍길동이 쥔 주식은 진짜'라고 보증해주는 주체가 없어도 토큰의 진실성이 보장된다. 중개인 없이도 세계 어디에서나 네트워크 참여자들끼리 이 증표를 사고팔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픈AI 같은 인기 회사 주식을 토큰으로 만드는 것은 파괴력이 매우 크다.

애초 증시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의 자산가가 이런 주식을 사려고 하면 자기 나라 국경 안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넘어야 할 자국 내 제도적·시장적 난관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상의 토큰을 살 수 있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탈중앙·탈국가적 특성 덕분에 클릭 몇 번이면 자국 증권 업자의 손을 거칠 필요도 없이 바로 오픈AI의 '토큰화' 주식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블록체인 토큰은 태생이 디지털이라 그 밖의 장점도 많다.

24시간 거래로 업무 시간이나 휴일을 따질 필요 없고, 주식이나 펀드를 쪼개 소유하는 '조각 투자'나 자동 프로그래밍 매매도 쉬운 데다 중개자가 없어 수수료 등 거래 비용이 싸다.

스테이블코인 등 암호화폐와도 궁합이 매우 좋다.

토큰과 암호화폐 모두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토큰화한 자산을 사고 암호화폐로 간편 결제하는 체제를 금세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토큰화한 자산과 암호화폐는 '치킨과 맥주' 관계다. 하나를 먹으면 다른 하나가 자꾸 끌려 단짝으로 인기가 올라간다.

미국 금융사들은 현재의 디지털 자산 붐과 맞물려 자산 토큰화를 금융시장을 새롭게 키울 핵심 수단으로 본다.

금융시장은 자산을 유통하는 효율과 속도가 증가하면 이에 비례해 대폭 성장한다. 종이가 아닌 전자증권이 등장하고 증시에서 사고파는 펀드인 ETF가 나오며 시장이 '빅뱅'급으로 불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한국 금융사에도 자산 토큰화의 매력은 크다. 예컨대 삼성전자나 코스피 200 펀드를 토큰화해 전 세계 투자자의 '최애' 자산으로 쉽게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자산 토큰화는 과제가 만만찮다. 정부 규제가 최대 고민이다.

토큰화 주식과 펀드의 법적 지위는 뭔지, 규제는 어떻게 달리 해야 하는지 선례가 없다. 금융 혁신에 개방적인 미국 당국조차 고심을 거듭하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토큰화한 자산은 법제화 논의가 막 시작 단계다. 단 첫 단추는 끼워졌다. 올해 내 통과가 예상되는 '토큰 증권' 법안(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그 주인공이다.

이 법안은 우선은 미술품, 부동산, 음원 등을 쪼개 지분을 보유하는 조각투자 증권이나 비상장 벤처 업체 등의 주식을 토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 법을 토대로 규제의 범위를 확대하면 종국에는 상장주식, 펀드, 채권 등도 대거 토큰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금투업계는 본다.

단 한국적 특수성은 존재한다.

우리 외환 규제가 미국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국경을 무시하는 블록체인 토큰의 파급력을 우리 규제 체제가 포용할 수 있을지가 국내 자산 토큰화 도입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신영증권의 임민호 연구원은 "미국 자본 시장은 자금 이동이 자유롭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단 현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원화의 국제화를 추진키로 하고 관련 규제를 점차 풀기로 한 만큼, 이 흐름을 우리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유심히 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원은 "국내 업계의 자산 토큰화 준비는 우선은 곧 통과될 토큰증권 법안의 틀을 따라 진행될 전망"이라며 "미국이 어떤 규제 선례를 내놓는지와 우리 외환 규제의 개선 논의에 따라 자산 토큰화의 안착 시기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a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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