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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토허구역 정비사업, 약정서 쓰고 구청 허가 안 나와 계약 취소 위기
정비사업이 활발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지 일부 조합원들은 주택을 매도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일부 복수 물건 보유자의 주택은 '물딱지'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재건축 후 잔금대출 등 대출 규제도 강화되면서 재건축 조합들은 "정비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6일 부동산R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는 249곳, 18만2천202가구로, 이 가운데 조합설립인가 이후 절차가 진행되는 단지는 141개 단지, 7만1천789가구로 추정됐다.
또 아직 조합설립인가 전이지만 안전진단 이후 정비사업 구역지정 단계에 있는 곳은 108개 단지, 11만413가구로 추산됐다.
이들 단지는 이번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16일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됐거나 조합인가나 신탁사 사업지정시행자 지정 이후 지위 양도에 제약이 생긴다.
10년 거주, 5년 보유 요건을 채운 1주택자이거나 지방 및 해외 이전으로 세대원 전원이 이주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양도가 허용된다.
최근 수도권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재건축 단지의 초소형 주택형을 보유하고 있다는 A씨는 "한순간에 집을 못 팔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건축 단지를 팔고 그 자금으로 청약 후 당첨된 신혼집에 입주해야 하는데 갑자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재건축 아파트의 조합원 양도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A씨는 "이대로면 당첨된 분양권을 팔아야 하는데 분양권이라 양도소득세가 66%에 달한다"며 "내가 집값을 올린 것도 아니고, 실입주하려고 분양을 받은 것인데 왜 이런 철퇴를 맞아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미 조합인가 또는 사업시행자(신탁사) 지정고시가 났거나 인가를 앞둔 단지의 조합원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정비사업을 추진중인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는 이미 6단지가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신탁방식으로 추진중인 13·14단지도 사업시행자 지정 고시를 받아 지위양도가 금지됐다.
신시가지 일대 재건축을 추진 중인 나머지 단지들도 내년 이후 신탁사 지정이나 조합설립인가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신시가지 14단지는 오늘(16일) 신탁사(사업자) 지정고시가 떨어졌는데 바로 이날부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며 날벼락을 맞았다.
게다가 목동은 기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석 연휴 전에 매매 약정서를 체결했으나 아직 구청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계약을 못하면서 매도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목동 신시가지의 한 공인중개사는 "다른 비규제지역은 대책 발표 당일에도 계약금을 넣고 종전 기준대로 대출도 받았지만, 목동과 같은 기존 토허구역은 허가 기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국토부에 약정서도 계약으로 인정해줄 것인지에 대해 문의도 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의 다물건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원당 주택 공급 수가 1가구로 제한되면서 동일 단지내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1가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현금청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정비사업 단지를 보유한 경우에도 5년 재당첨 제한에 걸려 각 사업지의 관리처분 시기가 5년 내로 겹치면 1가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정비사업 단지들이 조합인가 이후에는 팔지도 못하고 1가구 외엔 다 물딱지가 되니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며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비사업 조합들은 대출이 강화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쏟아냈다.
이주비 대출은 종전대로 나온다고 해도 잔금대출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 15억원 초과 주택 대출 감소(2억∼4억원) 등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 때문에 도심 집값 안정을 위해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정부 의지와 달리 사업 추진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재건축 단지의 추진위원장은 "갑자기 매도가 막히거나 현금청산 대상자가 늘면서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조합설립인가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과거에도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일 때 정비사업이 매우 부진했는데 앞으로 사업 일정이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재개발 단지는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시점이 관리처분계획 이후로 재건축보다 짧아 상대적으로 타격은 덜한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재개발 단지가 이번 대책의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규정은 투기과열지구내 2018년 1월 24일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재건축(조합설립인가 이후)·재개발(관리처분인가 이후) 단지부터 적용되는데 재개발 구역에서 그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단지들도 적지 않다.
서울의 북아현 2·3구역이나 노량진 2·4·6·7·8구역, 흑석 9구역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재개발 사업을 진행중인 단지는 387곳에 이른다.
다만 이번 대책에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는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3중 규제'로 강도 높게 지정되면서 재개발 사업도 거래가 쉽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투기과열지구내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이 추가되면 정비사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선 공급 확대 기조 등을 고려해 분상제를 제외했지만, 앞으로 고분양가 문제가 불거지면 분상제 역시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카드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재개발 추진 구역 매수자들의 상당수가 갭투자였기 때문에 토허구역 지정 등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거래 침체와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 사업성에도 문제가 생겨 전반적으로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이어 "과거 서울 전역에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됐을 때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없어 정비사업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며 "분상제까지 도입되면 정비사업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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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