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비자금' 실체판단 안한 대법…"불법이라 주장 자체 안돼"

기사입력 2025-10-16 17:13

(서울=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에서 서울고법은 5월 30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천808억원의 재산을 분할해주고, 2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4.12.17 [연합뉴스 자료사진]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 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컨벤션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 미래인재 콘퍼런스 인재토크 패널로 참석해 미래 인재상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2024.11.26 hkmpooh@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가 파기환송으로 판결이 난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최 회장 측 소송대리인단인 민철기(왼쪽)·이재근 변호사가 판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5.10.16 hwayoung7@yna.co.kr
"지원됐다고 해도 재산분할 대상 아냐"…"법적 보호가치 없어 분할시 노소영 기여로 인정 불가"

파기환송심선 3가지 갖춰야…'노태우 비자금'·'최태원 처분재산'은 빼고 분할비율은 조정해야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2심 판단을 깬 핵심 사안의 하나는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평가였다.

2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가에 건넨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으므로, 최 회장 재산에 대한 노 전 대통령 부녀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나 설명을 담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16일 판결에서 비자금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비자금이 지원됐다고 하더라도, 노 관장이 이를 '종잣돈' 삼은 SK 그룹 성장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재산분할에서 참작하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다.

1, 2심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이지만 3심은 법률문제를 다루는 '법률심'이다. 하급심은 어떤 행위나 사실이 존재하는지 여부의 문제를 다루지만, 상고심은 법률 해석과 적용을 통해 어떤 행위나 사실이 법적 가치를 지니는지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즉 하급심은 사실의 존부 판단을, 법률심은 가치 판단을 다루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법원은 우선 "노태우가 1991년경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또 "피고(노 관장)가 노태우가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국 노태우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부분의 판단에서 모두 대법원은 비자금 존재 자체는 별도로 놔두고, 그것이 있든 없든 간에 어느 경우에도 불법적으로 취득해 발생해 얻은 민법상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불법원인급여는 민법 746조에 규정돼 있다. 이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기초해 급부가 이미 이행된 경우를 가리킨다. 그에 대해 반환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미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법적으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 논리를 "민법 746조는 사법(私法)의 기본이념으로서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의 보호영역 외에 두어 스스로 한 급부의 복구를 어떠한 형식으로도 소구할 수 없다는 법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지 부당이득 반환청구권만을 제한하는 규정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에서도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청구를 배제한 민법 746조의 입법 취지는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태우 비자금이 뇌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 이는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것이며, 설령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했다.

파기환송심을 담당할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단 취지에 따라야 한다. 이를 기속한다고 표현한다. '노태우 비자금' 부분을 최 회장 주식에 대한 노 관장 기여 요소에서 제외하고 기여분을 새로 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비자금이 존재하는지 따져보게 될 전망이다.

재산분할 대상을 형성하는 큰 기둥은 한 축이 '노태우 비자금을 통한 SK 재산 확장 여부'이고, 다른 한 축은 최 회장이 앞서 제3자에게 처분했던 주식과 돈이 재산분할 대상인지 여부였다.

파기환송 전 원심이 노 전 대통령의 해당 금전을 종잣돈으로 형성됐다고 본 SK 주식이 전체 분할대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다, 최 회장 처분재산도 분할대상에서 빠지는 점을 고려하면 파기환송심에서 대상이 되는 재산분할 규모는 일단 기존보다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분할 비율 산정도 잘못했다고 대법원이 지적해 비율도 바꿔야 한다. 기존 2심의 분할 비율은 최 회장 65%, 노 관장 35%였다.

즉 존재 자체가 불명확한 '노태우 비자금'은 존부를 떠나 자체가 불법원인급여이므로 아예 고려 대상이 안 되고, 최 회장이 처분했던 재산은 빼돌리려는 목적이 아니니 분할대상이 안 되며, 분할 비율은 낮춰야 한다는 3가지 요건을 대법원은 제시한 셈이다.

이날 대법원 판단이 이혼 소송으로 점화한 '노태우 비자금 은닉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해 항소심 선고 이후 시민단체의 고발이 잇따르면서 검찰 수사도 시작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일가 등의 금융계좌를 확보해 자금 흐름도 쫓고 있다. 다만,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분석 대상 자료 자체가 워낙 광범위한 데다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 자료 파악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already@yna.co.kr

[https://youtu.be/JtpimWy4uc0]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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