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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속구의 전설 놀란 라이언은 시속 160km의 공을 던진다. 테니스 팬들은 피트 샘프라스의 200km 서브에 열광한다. 스쿼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운동이다. 미국 대학의 스쿼시 선수들은 일상적으로 시속 250km가 넘는 공을 친다. 이 스피드를 받아내야 하는 선수들은 스피드스케이팅, 사이클 선수급의 허벅지와 올림픽 복싱, 레슬링 선수급의 심폐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경기당 2시간이 걸리는 스쿼시와 비교하자면 90분 축구는 선수들 대부분이 어슬렁거리다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문호이자 저널리스트인 톰 울프의 '스쿼시 예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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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는 부천 상동초 5학년 때 아버지와 형을 따라 나선 집앞 복사골문화센터에서 스쿼시를 처음 접했다. 처음부터 스쿼시 선수가 될 뜻은 없었다. 재미 삼아 시작한 종목에서 놀라운 재능을 드러냈다. 문화센터에서 동호인들과 일주일에 3번씩 볼을 치던 어린이는 중학생이 되자 전국 랭킹 2-3위를 다툴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공부도 꽤 잘했다. "작심하고 공부하면 반에서 5등안에 들었다. 운동은 취미삼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3때 김장철 일산 대진고 코치의 설득으로 뒤늦게 전문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스쿼시를 안하면 후회할 것같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써온 훈련일지의 글씨체는 찍어낸 듯 반듯했다. "스쿼시를 잘하려면 연습량도 중요하지만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복기하고 연구했다. "스쿼시의 묘미는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다. 공간을 통해 상대를 힘들게 하고, 랠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짜릿하다"고 했다. 스쿼시는 공간을 지배하고 변수와 싸워야하는 두뇌싸움이자, 극강의 피지컬을 요하는 체력전이자, 같은 공간에서 상대의 움직임과 마음을 읽고 다스려야 하는 배려의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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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는 고2 말, 미국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미국 브라운대 스쿼시팀에서 뛰다 서울대에 입학한 선배 이상훈을 멘토 삼았다.
2015년 12월 미국 예일대에서 열리는 전미주니어대회에 자비로 출전했다. 출전에 앞서 이인우는 미국 10여 개 대학에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한국의 이인우라는 학생선수다. 이번에 예일대에서 열리는 전미 주니어대회에 출전한다. 현장에서 내 경기를 지켜봐달라.'
한국 소년의 대담한 이메일에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응답했다. "가서 꼭 보겠다" "경기 영상을 보내달라" "우리 학교에 찾아와 상담하면 좋겠다" 등등. '스쿼시 불모지' 한국에서 혈혈단신 미국 대회에 나선 고등학생의 용기는 놀라웠다. 스스로 갈고닦은 영어로 자유롭게 외국 선수들과 소통했다. 한국 스쿼시는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인우는 거침없이 도전했다. "최선을 다해 부딪쳐봐야죠. 미리 고개 숙이고 들어가지는 않아요." 패기만만했다. 첫 출전한 2015년 17위, 지난해 대회에선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저 선수 누구지?' 작지만 당찬 한국 에이스의 플레이에 미국대학 감독과 선수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아버지 이윤권씨는 빠듯한 월급쟁이 살림에도 막내아들의 꿈을 응원했다. 자비로 홍콩 말레이시아 페낭 대회 등 9번의 국제대회에 아들을 내보냈다. 기특한 아들은 큰무대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8월 초, 이인우는 각국 에이스들이 출전한 홍콩 19세 이하(U-19)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유수 대학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인우는 꿈의 아이비리그, 하버드나 예일 대신 현실적인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으로 가야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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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을 향한 거침없는 10대 에이스의 도전은 플레이스타일와도 빼닮았다. 강호석 청소년대표팀 코치는 "인우의 플레이는 과감하고 도전적이다. 작은 면적을 치명적으로 공격한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훈련, 시합을 통해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성공하면 무조건 포인트가 되는 지점을 확실한 타이밍에 공격하는 센스와 과감성이 있다"고 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용감무쌍한 청춘이다. 남들도 다하는 안정적인 플레이 대신 실패할지언정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결정타를 시도한다. 이인우는 "일단 부딪쳐봐야죠. 밑져야 본전인데, 무조건 해봐야죠"라며 싱긋 웃었다.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간이 길어진다'는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좌우명이다. "그래서 늘 시간이 아깝다. 바로 실천을 못하면 양심에 아주 찔린다"며 웃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토종선수의 미국대학 '무한도전'도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가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다. 이인우는 "불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도 힘이 되고 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요즘 이인우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한다. 1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한 후 오후 2시부터 일산에서 스쿼시 훈련을 한다. 10월 충북체전에 대전대표로 출전한다. 선수로서 운동도 게을리할 수 없다. 5시쯤 귀가해 저녁식사후 밤 12시까지 공부에 몰입한다.
하루 4시간, 새우잠 자는 고된 나날에도 소년의 눈은 꿈으로 반짝인다. '한국인 스쿼시 에이스' 이인우의 찬란한 가시밭길은 후배 학생선수들의 꽃길이 될 것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