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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人터뷰]'런던銅'조준호"안창림을 억울하게,오노를 비참하게 만든 판정"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8-31 08:40



30일 오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 유도장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73kg급 결승전이 열렸다. 안창림이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8.30/

"패자는 억울하게, 승자는 비참하게 만든 판정이다."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조준호 MBC해설위원(전 유도 국가대표 코치)이 안창림의 석연찮은 절반패 판정에 대해 할 말을 했다.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펼쳐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73kg급 결승전 판정 논란 직후다. 이날 안창림과 오노는 연장 7분을 포함, 무려 11분의 대혈투를 펼쳤다. 0-0, 팽팽했던 4분 정규경기는 연장 골든스코어로 돌입했다. 지도를 하나씩 받은 상황에서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수비적인 자세를 취한 오노가 지도를 하나 더 받았다. 안창림은 더 공격적으로 나섰다. 연장 4분30초를 넘어서자 두 선수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연장 5분 안창림이 지도를 받았다. 지도 2-2의 상황, 연장 7분을 넘어서는 대혈투, 안창림과 오노가 한차례 격돌한 후 심판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하더니 비디오 판독 끝에 안창림의 절반패를 선언했다. 오노의 허벅다리 걸기 공격에서 안창림의 오른 어깨가 매트에 닿았다고 판단했다. 석연찮은 '절반' 선언에 경기장엔 야유가 쏟아졌다. 심판들이 비디오 판독을 진행하는 동안 관중석에선 "코리아! 코리아!" "페어플레이!" 함성이 울려퍼졌다. 오노와 나란히 선 시상대에서 안창림은 단 한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승자'인 오노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다. 은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안창림은 복받친 울음이 터졌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흐르는 내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 직후 만난 조 위원은 유도 전문가로서 "절대 절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오히려 안창림의 업어치기 되치기 상황에서 오노의 등이 바닥에 닿았다고 봐서 안창림이 승리했다고 봤다"고 했다. "심판들이 해당 장면 비디오를 멈춰놓고 '팔이 안쪽에 있지 않느냐'라며 절반을 선언했다는데, 절반은 옆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팔이 안이냐 밖이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상황 자체가 옆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팔꿈치가 접혀 있는 상황에서 이 판정은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도가 스스로 창피한 일을 자초했다. 일본 유도의 자존심은 억지로 살렸다지만 오노의 자존심은 뭉갠 것이다. 오노가 떳떳하겠나. 패자는 억울하고, 승자는 비참하게 만든 판정"이라고 단언했다.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오노 쇼헤이는 일본 유도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조 위원은 "쇼헤이는 일본의 유도영웅이자 세계 최고의 유도스타다. 그가 지는 것은 일본 유도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무리한 판정의 이유를 추측했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 모든 심판들이 주목하는 '원매트' 결승전에서, 비디오까지 판독해 석연치 않은 결정을 내린 부분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현장의 심판들 역시 절반 판정 직후 웅성대며 의구심을 품었다. 조 위원은 "예전과는 다르다. 이 영상을 전세계 유도인들이 다 보고, SNS를 통해 퍼져나갈 텐데 이 판정을 어떻게 떳떳하게 설명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장면마다 모두 절반을 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경기 직후 오노는 "심판이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같다"고 인터뷰 했다. 일본 감독 역시 "납득할 수 없는 결말"이라며 판정의 문제를 자인했다. 시상식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안창림 옆에 선 오노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조 위원은 "우리 선수들은 늘 페어플레이하길 원한다. 오노도 이렇게 승리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노는 지면 졌지 부끄러운 챔피언이 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치열하고 흥미진진했던 11분 혈투는 선수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종료' 됐다. 선수들 스스로 승부를 결정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연장혈투, 모든 것을 쏟아낸 후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일, 승자도 패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맨십, 가장 감동적이고 훈훈한 장면을 만들 수 있었던 경기를 석연찮은 판정이 망쳤다. 조 위원은 "유도 저변 확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6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어이없는 '판정 번복' 논란에 휘말리고 기어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조 위원은 안창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창림이가 애써 참는 모습을 보면서 선배로서 가슴이 아팠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시상식 직후 안창림에게 달려가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창림이를 만나고 왔는데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요'하더라. 선수는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는 방법밖엔 없다. 작은 빌미도 주지 않고 이길 수밖에 없다. 더 강하게 버티고, 더 확실히 던져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상대전적이 5전패가 됐지만 오늘 보셨다시피 매경기 따라붙고 있다. 오노가 질 것같으니 이런 판정을 한 것이라고 본다. 오늘 경기는 이미 넘은 것과 다름없다. 절대 상심할 필요 없다. 당당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련이 왔을 때 울면서 하소연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시련조차 이겨내는 사람이 있다. 창림이는 후자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욱 성장시킨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안창림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다. 더욱 성장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카르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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