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말이 돼요? 이게 말이 돼요?" "혼자 다섯번을 찔렀어! 혼자 다 찔렀어!"
동시공격(악시옹 시뮬타네)에서 두 선수 모두의 득점을 인정하는 에페 종목에서 10-14 스코어를 15대10으로 뒤집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지난해 세계챔피언이자 올림픽 5회 출전에 빛나는 세계랭킹 3위의 백전노장, 세계 1위를 준결승에서 꺾고 올라온 기세등등한 게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결승 무대에서 동시타 없이 나홀로 5번을 연속으로 찔러냈다는 것은 최 위원의 말대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말도 안되는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
|
박상영은 9-13, 4포인트차로 1-2피리어드를 끝냈다. 1피리어드부터 선제 2점을 허용한 후 2점차 내외로 뒤지더니 2피어리드를 4점차 뒤진채 마쳤다. 패색이 짙었다.
그리고 작전을 완전히 바꿨다. 유난히 가벼웠던 날아오르기 공격이 백전노장 임레에게 번번이 막혔다. 지난 3월 밴쿠버월드컵에서 박상영에게 패하는 등 2전패를 기록한 임레는 박상영을 침착하게 공략했다. 3피리어드, 공격 일변도로 막히던 적으로 덤비던 작전 대신 침착하게 수비를 하면서 타이밍을 완전히 뺏는 작전으로 마음을 바꿨다.
동시타 하나도 허용해서는 상황, 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플래쉬(날아서 찌르기)'와 '파라드 리포스테(막고 되찌르기)'가 동시에 작동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 무력화시킨 후 찌르는 이 전법이 교과서처럼 맞아들었다.
그를 키워낸 정순주 경남체고 코치에 따르면 박상영의 장기인 플래쉬 기술은 중학교 시절부터 연마한 필살기다. "에페 선수치고는 신장이 작은 박상영은 피지컬 대신 두뇌와 스피드를 활용하는 자신만의 기술을 집중연마했다. 휴가 때도 연습을 쉬지 않았을 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막는 속도보다 찌르는 속도가 무조건 더 빠른 플래쉬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가 뻔히 알고도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필살기 하나로 생애 첫 올림픽에서 '기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상영은 올림픽 펜싱 남자에페 개인전 116년사를 통틀어 두번째로 어린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무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16세의 나이에 금메달을 딴 라몬 폰스트(쿠바) 이후 무려 116년만에 가장 어린 챔피언이 됐다. 뿐만 아니라 박상영의 금메달은 대한민국이 해방 직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올림픽에서 따낸 250번째 메달이다.
대역전패 당한 임레의 입장
박상영과 결승에서 맞붙어 대역전패의 쓴맛을 봐야 했던 '백전노장' 게자 임레(헝가리)의 이날 출전나이는 41세 230일. 1928년 41세 315일의 나이에 에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루시앙 고댕(프랑스) 이후 역대 두번째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될 찬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경기후 인터뷰에서 "64년만의 최고령 펜싱 메달리스트의 기록"이라는 말에 임레는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렇다, 최고령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최고령 패자이기도 하지 않나. 나는 또다시 은메달을 땄다. 은메달은 금메달과 엄연히 다르다"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최고령 우승자였던 임레는 세계 펜싱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다. 1995년생인 박상영이 고작 1살 때인 1996년 이미 애틀란타올림픽에 출전해 이 종목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단체전에선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 잇달아 출전했다. 그의 5번째 올림픽이었던 리우에서 21세나 어린 '약관' 스무살 동양의 선수에게 충격패했다.
올림픽 결승 무대, 믿을 수 없는 역전패 후 임레는 피스트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경기후 인터뷰에서 임레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패인을 털어놨다. "박상영이 마지막에 전술을 바꿨다. 경기 내내 내 무기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던 그가 전술을 바꾼 후 내 포인트를 찌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상영은 너무 빨랐고, 나는 '동시타'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