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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따면 내 모든 임무는 끝난다."
17일 밤 11시(한국시각), 독일과의 동메달 결정전, 주세혁이 한국 탁구를 위한 마지막 미션 수행에 나선다. '깎신' 주세혁의 명품 커트를 올림픽에서 만날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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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는 최고의 팀플레이어다. 단체전에서 에이스의 2점을 책임진다. 언젠가 주세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야구로 치자면 이승엽보다 양준혁같은 스타일이다. 독보적인 에이스로 활약할 때보다 2선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할 때 더 편하고, 성적도 좋았다."
후배들은 실력있고 겸손한 선배, 주세혁을 마음으로 따른다. 실력만큼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후배들에게 군림하는 '꼰대'가 아니다. 행동으로 솔선수범한다. '7살 차 수비전형' 후배 서효원도 스스럼없이 다가서서 격의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지난 연말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승부욕에 불타 자신에게 결례한 '후배' 장우진을 모두가 비난할 때, 오히려 "형도 그랬어. 난 그 나이 때 더했어"라는 한마디로 감싼 '대인배'다. 한국탁구의 미래와 경험을 위해 자신의 리우올림픽 개인전 출전권도 후배 이상수에게 기꺼이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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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올림픽 "단체전 메달, 내 마지막 임무"
주세혁은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선수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 남자단식 준우승 이후 지난 13년간 철저한 자기관리로 정상권을 지켰다.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세월을 거스르는 '반전' 경기력은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7월 코리아오픈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했고, 올해 5월 크로아티아오픈 단식에선 2006년 코리아오픈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세번째 올림픽이다. 아테네에선 단복식 16강에 만족해야 했다. 2012년 런던에선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이후 나홀로 대표팀에 남았다. 2014년 도쿄세계선수권, 흔들리는 후배들과 함께 시련을 감내했다. 2014년 도쿄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한국탁구는 10년만에 처음으로 4강을 놓쳤다. 이상수-정영식 등 후배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우리가 더 열심히, 더 잘해서 세혁이형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콸라룸푸르 세계선수권 단체전, 이들은 2년만에 기어이 동메달을 되찾아왔다. '난적' 포르투갈을 이기고 동메달을 확정지은 순간 정영식은 대선배 주세혁을 번쩍 들어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 목표는 오직 메달이다. "선수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후배들과 꼭 함께 메달을 따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수년째 자가면역질환인 '희귀병' 베체트병을 견디고 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직전 찾아온 기분 나쁜 발목 통증,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이다. 강문수 감독은 "훈련이 문제가 아니라 컨디션이 문제"라고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만전을 기했다. 리우올림픽 단체전, 선후배의 시너지는 눈부셨다. '깎신' 맏형의 분투에 훌쩍 자란 이상수, 정영식이 패기로 화답했다. 지난 4년 동고동락해온 '연습벌레' 후배들의 성장은 흐뭇했다.
"징검다리의 끝이 보이냐"는 질문에 주세혁은
"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따면 내 모든 임무는 끝난다"고 답했다. "이후는 후배들의 몫이다. 정영식, 이상수가 제몫을 할 것이다. 김동현 장우진 김민혁 등 어린선수들도 있다. 앞으로도 한국탁구는 4강권을 유지할 것이다."
주세혁 탁구의 관전 포인트는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에 있다. 서른여섯까지 정상을 지킨 비결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다. 2~3세트를 먼저 내주더라도 끝내 마지막까지 기대를 놓지 못하게 하는 탁구, 죽은 줄 알았던 슈퍼히어로가 잿더미 속에서 뚜벅뚜벅 일어설 때의 감동과 안도감, 주세혁의 진가는 넘어지되, 결코 쓰러지지 않는 그 지점에 있다.
길고긴 태극마크의 여정, 이제 올림픽 메달의 꿈 하나가 남았다. 포기를 모르는 '탁구 영웅'의 해피엔딩을 응원한다.
리우데자네이루=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