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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결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8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제13회 국제수영연맹(FINA) 쇼트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 이틀째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이 열린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 WFCU 센터. 8명의 선수가 출발대 앞에 섰다. 장내가 소란해졌다.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신사숙녀 여러분, 출발을 위해 정숙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웅성거림은 약속이나 한듯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무겁게 흐르는 정적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스타트. 박태환이 잠시 사라졌다 수면 위로 등장했다. 힘찬 스퍼트. 박빙 속에 50m까지 아나운서는 라이언 록티(미국)가 2010년 두바이 대회에서 세운 대회 신기록(1분41초08)을 설명하고 있었다. 50m를 막 도는 순간 아나운서의 눈에 선두가 보였다. 1번 레인, 박태환이었다. '400m 우승자 박태환이 50m까지 세계신기록 페이스로 선두에 나섰다'는 설명이 질주중인 그의 뒤를 따랐다. 한번 잡은 선두 레이스, 추월은 없었다. '박태환'에 대한 흥분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마지막 50m 구간. '박태환, 스틸 리딩(여전히 선두다)'이란 말이 반복됐다. 결국 아나운서의 잔뜩 흥분된 목소리와 관중의 함성 속에 그는 가장 먼저 터치 패트를 찍었다. 1분41초03. 대회 신기록이자, 2007년 베를린 FINA 경영월드컵에서 자신이 세운 아시아기록(1분42초22)까지 넘어선 기록이었다.
박태환의 뒤를 이은 2위는 1분41초65를 기록한 채드 르 클로스(남아프리카공화국), 3위는 1분41초95의 알렉산드로 크라스니크(러시아)였다. 2위 채드 르 클로스는 올해 리우 올림픽 자유형 200m 은메달리스트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접영 200m에서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선수다. 전날 자유형 400m 우승(3분34초59)에 이은 이틀 연속 세계 정상. 놀랄만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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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전국체전 2관왕에 오르며 변함없는 국내 최고임을,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자유형 100m, 200m, 400m, 1500m를 모두 제패하며 아시아 최고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번 세계선수권 200m,400m 우승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국내→아시아→세계'로 이어진 단계별 부활 드라마였다. 리우 올림픽 이후 불과 4개월 만의 대반전. 이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노력파' 박태환이었기에 가능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재도전을 결심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스승 노민상 전 대표팀 감독은 "태환이가 전국체전 직후에 찾아왔다. 쉬지 왜 왔느냐고 했더니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까지 갈겁니다'라며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신력의 승리였다. 성찰의 시간 이후 정신적인 장애요소가 제거되면서 의욕을 되찾고 훈련에 몰두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쉼 없는 노력은 전성기 박태환의 근력과 심폐능력을 부활시켰다. 몸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전략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그는 200m 예선을 7위로 통과하며 결승에서 3~5레인 경쟁자를 피해 1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접근이었다. 노민상 감독은 "전략의 승리였다. 그들끼리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고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쳤다"며 기특해 했다. 실제 박태환은 출발부터 끝까지 풀 스퍼트로 물살을 갈랐다. 경쟁자는 오직 자신 뿐. 오로지 직직 뿐이었다. 덮어놓고 '직진본능'이 1번 레인의 불리함을 딛고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그를 우뚝 세웠다.
노력하는 박태환이, 천재 박태환을 이기고 있다. 침체일로 한국 수영의 희망도 되살아 나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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